“하이힐 신은 거대한 코끼리는 위태로운 현대인”
“하이힐 신은 거대한 코끼리는 위태로운 현대인”
  • 배세정 기자
  • 승인 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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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작가, KT&G 상상마당에서 ‘여행하는 코끼리’ 전시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열린 ‘여행하는 코끼리(Traveling trunk)’전 설치 작품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열린 ‘여행하는 코끼리(Traveling trunk)’전 설치 작품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우리의 주변에 널려있는 게 예술인데, 사람들은 예술을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일상 속에 갑자기 나타나는 예술을 만들고 싶어요.”

  ‘여행하는 코끼리(Traveling Trunk)’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이정윤 작가(미술학부·04년졸)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 하이힐을 신은 거대한 코끼리 풍선을 국내외 곳곳에 설치한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공항이나 바닷가, 건물 위 등에 자리 잡은 코끼리는 누워있기도 하고, 튜브를 타기도 하고 심지어는 엉덩이만 박혀 있기도 하다. 

  코끼리는 그들만의 규율과 통제 속에 조직적인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이 모습이 인간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 이 작가는 코끼리를 통해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제 몸뚱어리도 감당 못 할 것 같은 분홍색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의 위태로운 모습이 꼭 현대인을 닮았다. 

  분홍색 하이힐은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틀을 의미한다. 이 작가는 “코끼리의 하이힐은 좋은 엄마, 좋은 작가, 좋은 딸로서의 틀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하이힐이 분홍색인 이유를 묻자 “미국에서 아기 소품을 사러 갔을 때 소품이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나뉘어있는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분홍색 하이힐은 교육받기 전부터 만들어지는 틀, 사회적 관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답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이 작가가 2009년 둘째 아들을 임신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화책에 나오는 코끼리를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다. 

  “모성애가 강한 코끼리, 아이를 재우기 위해 그늘을 드리워주는 코끼리의 모습에 동화됐어요. 그때는 여행도 가고 싶고 자유로워지고 싶었지만 나에겐 아이가 둘이나 있어 내 맘대로 작품세계를 펼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코끼리를 대신 여행 보내기로 한 거죠.”

  코끼리 작품은 바람을 빼면 여행 가방에 담을 수 있도록 풍선으로 만들어졌다. 코끼리 코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Trunk’는 여행용 큰 가방, 몸뚱이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작가는 “Trunk는 우리 몸, 또는 코끼리일 수도 있고 여행 가방일 수 있는 중의적 의미”라고 설명했다.

  7m나 되는 코끼리를 여행시키기엔 물리적 한계를 느낀 이 작가는 자신의 복제된 자아들을 어떻게 더 여행 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약 25cm 높이의 하이힐 신은 봉제 인형 코끼리 350마리를 제작한 뒤, SNS로 프로젝트 참여를 지원한 16개국의 관객에게 보내는 식으로 코끼리들을 여행 보냈다. 이것이 2012년 시작한 ‘왕복 여행 프로젝트(Round Trip Project)’다. 프로젝트의 이름에 걸맞게 코끼리 인형들을 장기간 관객에게 분양하고 잠시 돌려받아 전시한 뒤,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려보낸다.

  “처음 보낼 땐 하얀 코끼리였는데, 사람들이 옷을 입히거나 색깔을 칠해서 보내오기도 해요. 국적이나 연령 등이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해 코끼리를 꾸며 보내더라고요. 개인들의 창의성이 코끼리로 인해 자극받고, 그 창의성을 펼치면 코끼리가 다른 형태로 바뀌는 거죠”

 

이정윤 작가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이정윤 작가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학부생 때 무대감독 경험을 했던 이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다. 여행하는 코끼리 프로젝트, 왕복 여행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다른 작업도 모두 관객의 일상에 침투해 소통을 시도한다. 

  “넥타이를 500명에게 기부받아 그걸 바느질해 카펫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 위에서 현대 무용수가 춤을 추죠. 기본적으로 모든 작업이 관객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아요. 일상에서 버려지는 넥타이, 일상적인 오브제들이 내 작업의 재료가 될 수 있어요. 관객의 일상 안에 항상 존재할 수 있는 게 예술이라 생각해요.”

  이 작가는 부산대, 신라대, 최근엔 동아대까지 약 10년 동안 몸담았던 교수직을 그만두고 작가로서 집중할 예정이다. 그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즐거웠지만, 여행도 다니면서 망설임 없이 내 작업에 직면하려 한다”며 “더 많은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보여주고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교수 재직 중 많은 학생을 만나왔던 그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내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어요.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야 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깊이 빠져서 공부하고 내 영역을 만들면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돈이라 생각해요. 또 약간의 발상 전환만으로도 생활이 되게 재밌어질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