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오른손을 허리에 놓고 옆구리를 조금 더 틀어 봐요. 아니 좀 더! 그렇지!


  화창한 5월이 되면 ECC 꼭대기 공터는 졸업사진을 찍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이화에 발을 처음 딛던 새내기 시절, 예쁘게 차려입은 선배들이 하얀 네모 단상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오며가며 구경하는 것은 봄날의 소소한 재미였다.


  언젠가는 사진을 찍을 날이 오겠지 하며 지나치던 그 장면들 속에, 어느덧 나도 졸업예정자가 되었다. 촬영 공지 문자를 받았을 때는 나도 드디어 졸업사진이라는 것을 찍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냥 설렜지만, 막상 사진을 찍으려 하니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촬영 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에 메이크업샵 예약을 하고, 당일에 입을 정장과 구두, 착용할 악세사리 구입까지. 그 동안 밀린 과제와 시험공부, 취업준비를 하기에도 바쁜 일상 속에 한 덩이의 짐이 추가된 느낌이었다. 좋은 추억을 남길 겸 가볍게 찍으려 했던 졸업사진이 이렇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줄이야.

 

  졸업사진 팁, 졸업사진 원피스, 졸업사진 메이크업 추천 같은 단어들로 내 포털 사이트 검색창을 일주일 정도 꽉 채웠다. 남들이 다 찍는 졸업사진이라 나도 찍기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똑같이 찍기는 싫다는 이상한 고집이 생겨, 결국 원피스 대신 정장바지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을 봤다. 기형적인 여성복 사이즈 때문에, 내 몸에 맞는 바지를 찾는데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허리가 조금 불편할 정도로 딱 맞게 들어가는 정장을 겨우 사서, 다음 날 메이크업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팩까지 하고 침대에 누우니 기분이 참 묘했다. 혹여나 당일 날 배가 나와 보일까봐 아침과 점심을 거의 굶다시피 했고, 화장이 무너지지 않게 부채질을 해대며 높은 구두 위에 올라가 절뚝절뚝 걸어 사진 촬영 장소로 향했다. 사진사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허리를 이리저리 틀어가며 야외촬영부터 실내촬영까지 마치고나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었다.


  하루쯤 코르셋 바짝 조여매고 고생해서 동기들과 오랜만에 예쁜 사진들과 추억을 남기는 건 제법 신나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두꺼운 앨범 속에 실릴 사진 몇 장을 위해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들을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밀려오는 허무함을 차마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졸업사진을 품에 안고 이화를 떠나게 될 졸업예정자이지만, 아직도 졸업하지 못한 것들이 분명히 있다. 가끔씩 나의 몸과 마음을 옥죄는 코르셋들로 범벅된 졸업사진 속 나는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겠지만, 그것들을 아직 졸업하지 못한 나는 사실 아주 많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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