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기간 연장·장학제도 등 정책 마련 시급

“영숙아, 혼인 날짜 잡았다.

내일부턴 학교 가지 말거라.” 20세기 중반, 공부하고 싶은 여성에게 결혼은 곧 학업 중단으로 이어졌다.

이런 여성들의 ‘방패’였던 금혼학칙은 57년이 지난 오늘, 그 수명을 다했다.

언제부턴가 오히려 기혼여성을 방패 밖으로 밀어내기도 했으니 ‘금혼학칙 폐지’는 환영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공부를 하고픈 기혼여성들에게 더이상 방패는 필요없단 말인가. 대학교 3학년에 기혼남이 된 김길수(연세대 대학원 입학예정)씨는 “아기가 귀찮게 하거나 자다 깨서 울면 집에서 공부가 안되죠”라고 말한다.

또 경기대 ㅅ(통계·2)씨는 “‘애 엄마가 무슨 공부냐’는 말 들으면서, 3살짜리 아이를 여기저기 맡기는게 제일 힘들죠”라며 한숨을 뱉어낸다.

두 사람 모두 아기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아기 울음소리’가 문제라는 남성과 ‘탁아·육아’를 떠맡은 여성. 두 사람이 처한 상황, 고민하는 문제의 성격은 차원이 다르다.

공부하고 싶은 여성에게 결혼은 여전히 뛰어넘기 힘든 장애물인 것이다.

‘결혼으로부터 여성의 교육권을 보호한다’는 금혼학칙의 목적마저 사라지기엔 아직 이르다.

이화의 금혼학칙 폐지는 ‘방패 없애기’가 아닌 ‘21C형 방패로 바꾸기’가 돼야한다.

서울여대 금혼학칙 폐지 후 첫 졸업생인 조영자씨는 “늦은 나이지만 기왕 용기낸 김에 컴퓨터 기초반을 수강했는데 점수가 낮아 속상했어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선 ‘학점따기’용 수업이란 말까지 들으니 화도 나더라구요”라고 말한다.

만학의 꿈에 부푼 늦깎이 입학생을 위한 학교적응 프로그램이나 상담, 컴퓨터 교육 프로그램 등이 있었다면 조씨의 어려움은 줄었을 것이다.

또 서울여대 ㅈ(경영·2)씨는 “휴학은 한 번에 1년까지밖에 못하잖아요. 아기 낳고, 그 다음 몸풀고, 아주 어릴때까진 아기한테만 신경 쏟아야 할 것 같은데 1년은 너무 짧죠. 학비도 만만치 않구요”라고 말한다.

기혼 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 혹은 장학금 신청 자격에 ‘출산·육아로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자’라는 조항 추가, 출산 시 휴학 기간 연장 등의 배려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기혼학생의 코 앞에 놓인 이런 어려움과 대안에 대해 학교는 어떤 논의를 하고 있을까. 정하영 기획처장은 교직원·대학원생을 위해 계획 중인 탁아시설에 대해 “학부생에게도 개방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가능성을 열어둔다’가 아닌 ‘당연히 학부생에게도 개방한다’는 명료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또 “기혼학생들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입지 않도록 학칙 적용은 더 엄격해 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그가 말한 ‘다른 학생들’과 기혼학생이 이화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어쨌든 기혼학생의 코 앞에 닥친 어려움을 막아줄 ‘21C형 방패’는 계획에 없는 듯하다.

금혼학칙 폐지로 꽤 시끄러웠던 학교 측은 “사실 금혼학칙이 폐지됐다고 결혼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냐”고 묻는다.

설령 한 명 뿐일지라도, 모든 이화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이화라면 해서는 안 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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