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혼제도, 결혼이 곧 졸업이던 시절 여성교육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우리 학교에는 다른 대학에서 볼 수 없는 금혼제도가 있다.

그 제정의 배경은 무엇일까. 이화학당이 문을 연 뒤 20여년 동안은 일정한 학제나 학년 같은 것이 없이 운영됐다.

학생들의 평균 연령이 12세 정도가 된 것은 1896년경의 일이다.

학생들은 10세전후로 입학해 결혼할 나이가 될 때까지 공부했는데 이 시절에는 결혼이 곧 졸업이라고 할 만큼 결혼과 동시에 자연스레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많아 학칙에 따로 혼인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열대여섯살이 되면 학교에서 결혼을 시키거나 결혼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졸업식이었다.

1908년이 돼서야 지금처럼 학업 이수의 의미를 지니는 졸업식이 따로 마련됐다.

이화학당 제4대 당장 룰루.E 프라이 선생은 1910년 여성교육에 있어 조혼이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고 보고 전문학교 과정이 준비되면 소녀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결혼 연령이 늦춰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혼여성들의 입학요구를 거부했다는 기록을 보면 기숙사 생활 규칙과 어린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기혼여성은 원칙상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조처들은 그 당시 사회배경을 고려했을 때 여성의 학업 환경을 보호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기혼여성이 이화에서 교육은 받은 경우도 있다.

「이화 100년사」에 의하면 1899년, 1907년에 기혼여성의 입학 요구를 거절해오다가 1908년에야 비로소 25명의 기혼여성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들 중 몇몇은 남편이 일본이나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사람들의 부인이었는데 남편도 ‘아내들이 무지한 상태에 있기를 원하지 않아’학교에 간절히 요청해 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금혼제도가 문서상으로 명시돼 있는 것은 ‘이화여자대학교 학칙’이다.

그러나 이 학칙이 마련될 당시의 자료가 소실돼 55년도 학칙에 금혼제도가 명시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돼 있다.

이화학당·이화여자전문대학 학칙에는 금혼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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