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ㅡ총론: <1> 왜 문화인가? - 2 「문화의 동요」를 넘어 「문화정치」를 향하여 이런 국면에서 문화의 문제가 중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문화는 삶의 방식으로서 정체성 생산의 중요한 메카니즘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체성의 정치가 일어나는 욕망과 무의식, 그리고 일상영역은 「문화정치」의 주요한 실험장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화정치의 모색은 「민중운동의 시민운동화」를 넘어서서 「민중운동의 내포적 심화와 외연적 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대중의 진출과 문화적 욕구의 증대라는 변화는 세번째 「계급」범주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주변부 포드주의 생산체제하에서 노동의 차이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화를 넘어서 노동자의 직종별 분화를 낳는 기반이 된다.

이에 따라 생산적 노동자와 전문기술직 노동자의 구분, 그리고 관리직 노동간의 구분이 심화된다.

생산관계에서 볼 때 동일한 위상을 갖는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사회적 노동조직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를 갖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임금과 분배 몫의 차이 때문에 생활영역에서의 계층분화가 촉진되어 단일한 노동자 계급의 통일을 저해하는 한편 생활상의 동질성에 입각한 이른바 사회집단으로서의 「중산층」의 성립근거가 마련된다.

또한 이러한 공통의 생활양식을 체험하는 동기집단효과는 연령효과 더불어 세대효과를 만들어낸다.

신세대 또는 X세대의 잠재력을 지나치게 과장할 것은 못되겠지만, 분명히 신세대는 억눌렀던 인간의 잠재적 욕구를 분출하고 일상의 기성질서에서 일탈하려는 저항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과 실천의 잠재력은 청년문화로 단일화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들의 역동적인 요소들 또는 모순들을 가동시킬 때에만 현실화 될 것이다.

한편 세대의 범주보다 더욱 계급의 문제를 현저하게 가로지르는 문제는 「성(gender)」의 범주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문제는 파형적 산업화를 거치면서 70년대를 지나는 동안 하나의 「문제」로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여성문제는 그간의 여성운동의 발전에 힘입어 노동문제나 사회문제, 계급문제처럼 우리사회의 실제하는 문제로 대두되었다.

여성 단체들이 조직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그 주체도 지식인 여성에서 여성대중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의 주체화」는 「페미니스트 패러다임」의 모색과 함께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일반 민주주의적 진전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매체를 통한 여성담론의 확산은 여성문제에 대한 일반 여성들의 지각을 일깨우고 있다.

물론 여성이 상품소비의 주요 타겟으로 설정되고 여성과 페미니즘의 상품화가 심화되는 경향은 간과할 수 없겠지만, 현재 여성들은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주요한 주체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문화정치」의 주체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끝으로 「예술」의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문화」를 예기하자. 부르주아사회에서 자율성이라는 제도로서의 예술개념으로부터 인간을 상품화에 대한 대안으로서 정신적 예술개념을 거쳐 예술과 사회의 평범한 삶을 재통합하려는 꾸준한 노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술들이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 노력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낱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올림픽 이후 칼라 텔레비전의 전국적 보급과 SBS 개국 등을 필두로 대중매체의 발전과 더불어 예술이 대중화되고 문화산업이 발전하면서 문화 영역들간의 경계들이 무너지고, 우리시대는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시대에서 삶이 예술을 모방하는 시대로 전환되었다.

영화와 광고, 그리고 디스틀레이된 도시의 건물과 거리들의 스펙터클은 이미 우리시대의 가장 훌륭한 예술들이다.

그러나 생활로서의 문화개념은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개념, 즉 예술 그 자체가 가치로 강조되며 때로 이 가치는 일상적 생활과 버젓이 분리되는 자율적인 예술로서의 문화개념을 대체하지는 못하였으며 오랜 잔여적인 개념들과 중복되거나 교차하는 양상을 띤다.

대중문화의 대중정치화 이제까지 살핀 바와 같이 「문화」는 산업화, 민주주의, 계급, 예술의 역사적 변화에 따른 전반적 반응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는 주변부 포디즘적 생산-소비체계의 강화와 유연적 문화 추제, 대중의 진출과 시민사회의 대두라는 일반민주주의적 진전, 계급의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세대와 성문제의 가시화, 그리고 일상의 삶을 구성하는 예술 등의 역사적 변화들에 대한 복합적 반응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문화를 모든 영역에서 대안적으로 제시해야 할 범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은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층위들과 문화 범주를 혼동 또는 동일시하는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그리고 문화가 일상생활을 포함한 거이 모든 층위들과 연관될 정도로 역동성을 지닌 새로운 범주로 출현하였음을 지적하기 위해 쓰여졌다.

이러한 성운과 같은 이미지의 문화지형학을 그려내기 위한 개념이 바로 「중층결정」 또는 「과잉결정」이라는 공간 정치화의 용어이다.

사실 지배계급은 문화의 개념을 다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문화에 결집된 힘을 무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고급문화를 언급할 때는 예술로서의 문화개념을, 대중문화를 말할 때는 생활방식 전체로서의 문화개념을, 전통문화를 강조할 때는 사회를 조직하는 민족정신으로서의 문화 개념을, 문화시킨을 독려할 때는 시민정신의 보편적인 상태 내지는 습성으로서의 문화개념을 사용하는 등 서로 다른 범주들을 지칭하는데 문화를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문화」에 교차시키면서 동시에 엇갈리게 하는 분류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유물론적 문화운동은 문화개념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문화영역과 제 층위들간의 「비선형적」이고 「혼돈」된 절합관계를 살피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이것이 문화다 』라는 선언이 아니고 기존의 문화판을 새로운 틀로 재구성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욕구들을 결집시키고 내재한 모순들을 작동시킴으로써 문화적 실천은 다른 제 영역들을 가로지르거나 빗겨가면서 기존의 제도적 분류를 해체하고 새로운 인간개념, 새로운 정체성을 재구성하면서 실질적인 진보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즈이 「동요」아니, 문화의 「혼동」을 돌파하고 대중문화를 대중정치로 전화시키기 위한 실험이 될 것이다.

류제홍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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