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사회갈등 통일독일 기우뚱 지난 90년 7월 1일 동·서독이 통일을 이룸으로써 한반도는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당시 독일 통일을 부러워하며 우리의 소원은「통일」임을 절감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통독의 모습은 어떠한가. 실업과 사회갈등으로 흔들리는 독일을 재조명하며 한반도에 가장 적합한 통일방안을 모색하고자 이 난을 마련한다.

<편집자>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다같이 나치독일이 2차대전에서 패한 뒤 독일을 분할점령하고 있던 연합국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가였다.

지난해 10월 3일을 기해 독일민주공화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독일연방공화국에 흡수된 것이다.

지난 49년 창설된 이래 각기 사회주의 방식과 자본주의 방식으로 일정한 경제적 번영을 누려온 동서독이 통합의 길레 나서기 시작한 것은 89년 여름 동독으로부터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서쪽으로「탈출」하면서 부터였다.

그 뒤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공산당)정권은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뒤쫓기 위해 에리히 호커너→에곤 크렌츠→게오르그 기지로 이어지는 지도부 개편을 단행해 보았지만 급격히 이반되는 민심을 수습하지 못한 채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을 개방함으로써 사실상「항복」하고 서독에 흡수통일되고 말았다.

동독인들은 지난 40년간 자신들의 존재이유였던 모든것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사회주의 동독은 「폐차처분」되었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그들의 앞길에는「풍요와 자유」라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동유럽 회강을 자랑하던 동독경제는 맥없이 무너져 자본주의 서독에 기생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동독의 산업과 노동자는 서독및 서방자본의 진출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채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그리도 이런 상황은 당분간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89년말 현재 동독인구는 1천 6백만. 그 가운데 노동인구는 9백 60만이었으며 이들은 공식적으로 1백% 취업상태였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91년 6월말 현재 옛 동독지역의 공식 실업자수는 1백 30만. 여기에다 단축 노동자 2백만, 조기연금생활자 50여만등「사실상의 실업자」수를 포함하면 옛 동독지역의 실업자총수는 적어도 3백 30만, 많으면 4 백 50만에 이르고 있다.

전체 노동인구의 2분의 1내지 3분의 1이 실직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실업증가 추세가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동독지역의 실업사태는 거의 모든 사회계층에 걸쳐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지식인과 고학력층, 그리고 여성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식인들의 경우에는 순수 과학과 기술분야보다는 이념적 지향이 두드러진 인문·사회과학전공자들의 희생이 압도적이다.

각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철학강좌가 폐지되거나 아예 학과 자체가 없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으며 기존 「이념학과」의 우수 졸업생들은 마땅한 취직자리를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90%이상에 달하던 동독의 여성취업률이 서독과 같은 수준인 50%미만으로 하향조정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각 작업장에서 감원대상 1호가 되기 일쑤이다.

동독지역에 이같은 실업사태가 몰아닥치고 있는 이유는 동독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아무런 준비단계없이 무리하게 서독의 고도 자본주의경제에 편입시킨 지난해 7월 1일의 동서독화폐·경제통합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통합전 동서독 마르크화의 교환비율은 대체로 15~20대 1이었는데도 헬무르 콜수상정부는 이를 무리하게 1대1 또는 2대 1로 교환시키는「환율의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칼 오토 포엘 연방은행총재의 말대로 이 조처는「대재난」이었다.

동독 마르크화가 실제 가치보다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는 바람에 경쟁력을 잃은 동독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으며 동독지역의 산업생산은 지난 6월말을 기준으로 1년 전에 비해 70%나 줄어들었다.

아직 도산하지 않은 기업들도「경영효율화」를 빌미로 노동자들에게 해고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콜 수상 정부가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폐·경제통합을 강행한 목적이 동독쪽의 자체산업 및 시장의 육성을 막고 서독 독점자본의 진출을 손쉽게 하려는데 있다는 주장이 최근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또한 1천 5백억 마르크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1조 5천억~2조억 마르크(약 6백 50조~8백 50조원)라는 막대한 통일비용이 소요되자 필연적으로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 압박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고금리 정책을 불가피하게 만들어 기업의 자금사정을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켜 무역적자를 초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콜 정부는 7월 1일부터 소득세를 7.5% 올리고 석유세를 37% 올리는 등의 세금인상을 통해 인플레를 억제하고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이는 반대로 국내 수요의 위축을 야기해 또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통일에 따른 경제적 문제에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이 동서독 주민들간에 사회심리적 갈등이다.

일반적으로 동독지역 주민들은 스스로를「2등국민」으로 의식하고 있으며 특히 실업자들의 경우 극심한 자아상실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많은 수의 동독지역 주민들이 자본주의적 경쟁논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같은 부적응은 범죄 등의 사회적 일탈로 바뀌어 표출된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자살율은 10%가 늘었으며 마약과 각종 범죄, 향락문화도 급증하고 있고 신나치주의가 준동해 외국인을 공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일방적이며 성급한 흡수통합이 가져오는 문제점들이 속속 나타나자 동과 서를 막론하고 통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막연한 환상도 점차 깨어지고 있다.

「독일통일의 기관차」로 지난해 12월의 통일 이후 첫 총선거를 압승으로 이끌었던 콜 수상의 집권기독교민주연합단이 그뒤 몇차례의 지방선거에서 연속적으로 패한 사실과 동독기업의 민영화를 책임지고 있는 공영신탁기구(트로이한트)의 로베더총재가 암살당한 사건들은 이같은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콜 수상 자신조차도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일련의 실수」를 저질렀음을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동서독에 맞는 통일방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두 체제의 장점을 다같이 살리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최재봉 한겨레신문 민족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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