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지난 9월 28일 북한의 일본과의 국교정상과 교섭제의에 연이어 9월 30일자로 효력을 발생한 한·소수교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주변정세는 45년간의 냉전구조의 지축을 뒤흔드는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한·소수교와 「두개의 한국」 소련의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정책적 목표는 86년의 블라디보스톡 연설이나 88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나타나듯이 「군비축소」와 「경험확대」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소련은 이 지역에서 자신의 정책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미·소 데탕트의 가속화, 중·소관계의 정상화, 일·소관계의 전환 등에 노력을 집중했다.

특히,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은 「이익의 균형」이라는 원칙 아래 한반도에 사실상 「두개의 정치·경제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초해 있다.

한편, 노정권의 북방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정권의 안정성 재고의 일환으로, 장기적으로는 북한 고립화와 개방화(북한이 동구와 같은 길을 걷도록 강제하는 것을 의미)정책이다.

게다가 북방정책은 미국의 동남아전략의 일환으로 기능하고 있다.

남한정부와 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에 관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미국은 동북아 국제질서에서 자신의 주도하에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소련의 남한 접근요구를 이용한 소련측의 협력유도, 미국내의 군비삭감 압력에 따른 주한미군의 부분감축 등을 유력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이 미국과 남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방정책과 맞아 떨어져 성사된 것이 「한·소수교」이다.

그렇다면 소련은 남한정부와의 국교정상화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첫째, 소련은 한반도에서의 냉전체제 이완을 미·일 양국의 정책 전환을 유도할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련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군축을 위한 공동보조를 취하는 한편 미국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협의를 계속하면서 크로스 데탕트를 통한 「교차승인」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소련은 남한과의 경제협력이 소련의 개혁에 미칠 단기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소수교 과정에서 「경협」이라는 명목하에 약 25억달러의 차관제공설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단, 소련은 자국의 생필품 부족현상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한과의 교역확대(주로 구상무역 확대)를 통해 내구 소비재분야의 공급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셋째, 소련은 시베리아·극동지역 개발에서 남한의 건설부분의 경험과 능력, 조선·철강 등 경제적 필요성으로 남한정부와 관계개선을 적극화하고 있다.

북한과 소련의 갈등 이러한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의 흐름이 만들어낸 한·소수교로 그동안 내연해 왔던 북한과 소련간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북한은 9월 19일자 「민주조선」에 6가지 한·소수교 불가사유를 적은 비망록의 외교문서 공개에 이어, 10월 5일 「로동신문」에 『달러로 팔고 사는 외교관계』라는 논평원의 글을 통해 한·소수교 뿐 아니라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노선에 대해서도 격렬히 비난했다.

이 논설은 「지금의 소련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를 견지하던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 심지어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라고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

이런 배경이 북한이 최근 새로운 외교공세의 방향으로 남북한관계의 진전 뿐 아니라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공식제의로 나타났던 것이다.

조·일수교의 의미 이번 북한의 대일본 관계개선 제의는 세가지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 북한은 대일청구권을 기본으로 한 일본과의 경제관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공동선언의 제1항(식민통치 및 전후기간의 배상문제)과 제3항(정치·경제 등 여러분야의 교류발전 및 위성통신 이용과 양국간의 직행항로 개설)에서 엿볼 수 있다.

둘째, 북한의 일본접근은 단기적으로 경제협력의 잇점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80년대 이래 줄곧 계속해 왔던 한·미·일 3각군사동맹의 내부에 균열을 야기할 수 있는 「약한고리」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태질서 내에서 영향력있는 국가로 발돋움하고자 모색하고 있는 일본에게 북한의 접근은 동북아에서 「미·소에 대한 견제카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셋째, 북한은 한·소수교과정에서 형성되고 있는 「교차승인적 기류」를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조선」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한 적극적이고 유연한 대응으로서의 일본카드를 활용한 것이다.

북한·일본간의 공동선언 제5항을 보면 『3당은 조선은 하나이며 북과 남이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부합된다고 인정한다』고 밝히고 있어, 북한은 「하나의 조선」원칙을 목표로 삼되 그 과정에서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미·일 등과 본격적으로 접촉하면서 오히려 「하나의 조선」을 관철시켜 나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교차승인」과 「유엔가입」문제 따라서 북한은 그동안 교차승인이나 유엔(동시/단독) 가입이 「두개의 조선」을 조작하려는 미국의 음모라고 규탄을 해왔는데, 한·소수교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과 수교하는 것은 「교차승인」과는 다른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이 방침은 미국에 대해서도 적용되는데 정작 미국은 북한과의 수교에 응할 수 있는 처지마저 못된다.

왜냐하면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려면 최소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주한미군과 핵무기의 철수가 양국간의 현안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 당사자원칙을 강조하면서 남한 정부와의 대화진전을 통해 「두개의 한국」정책에 제동을 걸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통일환경조성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의 협상을 계속 강조해 나갈 것이다.

여기서 미국은 남북대화진전, 핵안전협정가입, 테러포기선언 및 입증 등 미·북한 관계개선의 5개항의 전제조건을 달아 북한과의 협상을 피하려 할 것이다.

한편 남한정부와 미국은 한·소수교를 통해 북한의 개방화·고립화 정책을 추구했으나 북한이 일본과의 수교협상으로 이를 상쇄해 나가자 이제 유엔가입문제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남한정부는 한·소수교로 남북정상회담의 계기를 포착하려 했던 목적이 실현되지 않자 유엔가입문제를 북한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유엔가입문제에 관한 한 주변정세는 중국의 태도가 큰 변수인데 아직 중국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즉각적으로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한·소수교와 조·일수교합의로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한반도 주변정세속에서 수교보다 중요한 문제는 「민족문제」를 냉철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외세는 외세로 설정해야 하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관점과 「민족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의 기초를 다져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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