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좋은 「제2의 대학로」그 실상을 알아본다

3월 23일자 한국일보에는 신촌 지하철역에서 연세대까지의 연세로에 있는 노점상을 전면 철거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실렸다.

이 안에 의하면 정부는 연세로를 제2의 대학로인 「청소년을 위한 문화의 거리」, 소위 「젊음의 거리·낭만의 거리」로 만들기 위하여 이 곳 50여개의 노점상을 철거하겠다고 한다.

서대문 구청의 한 관계자는 『연세로는 인도 2~3m로 좁은 길에 하루 최소 5만여명이 통행하고 있습니다.

연세로에 문화의 거리가 조성될 시에는 더 많은 인구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원활한 통행을 위해서 노점상 철거는 불가피합니다』라고 연세로 노점상 철거의 1차적 이유를 설명한다.

정부의 이와 같은 방침에 따라 구청측은 지난달인 4월말께 노점상 철거를 강행하려 했다.

그러나 현재 이곳의 대대적인 철거는 일단 보류된 상태이다.

이는 4월 15일경의 부분단속 때 발생한 사건 때문이다.

이날 단속반원들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앞에 있는 노점상 2채를 강제 철거하려다가 때마침 나온 연대생들에게 저지당한 일이 있었다.

이에 구청측은 강제 철거시 인근 대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예상, 일단 보류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전면철거는 중단되었지만 부분적인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연세로에서 과일행상을 하는 신영신씨(54세)가 구청단속반원들에게 구타를 당하여 이빨 3개가 부러지는 등 전치 6주의 중상을 입기도 했다.

전면 철거 보류에 대해 서대문 구청 건설관리과 한 직원은 『우리는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왜 보류됐는지, 언제 철거될 것인지 아래에서 일하는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라며 대답하였다.

노점상 철거 시기에 대해 이재춘씨(전국 노점상 연합회(이하 전노련) 서울 서부지구 사무국장)는 『현재도 부분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대적인 철거는 학생들이 방학에 돌입하고 여름 농촌활동을 떠나는 6월 하순~7월 초쯤으로 예상됩니다』라며, 이는 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우려한 구청측이 소강상태를 이용하여 강제철거를 단행하려는 교묘한 술책이라고 비난하였다.

현재 연세로 주변이 철거를 둘러싸고 이렇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원인은 두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이곳 노점상들도 지역개발차원에서 거리가 깨끗해진다는 데는 일단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철거 이후 생계를 위한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현재 구청측에서는 철거 이후에 가두판매대(이하 가판대) 설치, 직업알선, 생계유지를 위한 5백만원 대출 등을 그 대책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안들은 얼핏 듣기엔 수긍이 간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 대책안은 대국민 선전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헛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가판대 설치가 그중 현실성을 지닌 대책안이다.

그러나 가판대를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어 이곳 노점상인 50여명 모두 입주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 뿐 아니라 입주비가 비싸기 때문에 영세 노점상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그 다음으로, 직업알선인데 가장 실효성 없는 대책이다.

왜냐면 노점상의 대부분이 30~50대에 이르는 아주머니들이어서 중년 이상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중년층의 여성이 그 나이에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도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대출해 주겠다는 5백만원의 융자인데 이 안 또한 현실적 대안이 되지 못한 채 생색내는데에만 적합한 대책안이다.

구청에서는 노점 철거 이후에 무이자인 새마을 융자 2백 5십만원과 저이자로 상업은행융자 2백 50만원, 총 5백만원을 지원해 생계유지에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융자금은 몇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액수상의 문제이다.

5백만원은 액수만으로 보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이 액수로 1평당 3백~2,3천만원 하는 가게를 빌어 다시 장사를 시작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5백만원 중의 상업은행 융자금 2백 50만원을 융자받는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이 융자금은 은행대출이기 때문에 재산세 1만5천원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사람 2명을 보증인으로 세워야 한다.

재산세를 납부하는 사람은 자신 소유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소위 중산층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집도 가게도 뚜렷한 직업도 없는 이들에게 집을 담보로 맡기면서까지 보증을 서줄 사람은 많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셋째, 혹 이런 사람이 있어 대출을 받았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지적한 첫째 문제점 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융자금에 대한 이자지불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융자금에 대해 매월 1만 3천원씩의 복리이자를 지불해야 하는데, 만약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그 달에 이자를 지불하지 못했을 경우, 다음달에는 원래 그달 이자 1만 3천원과 전달 이자와 연체료를 합한 2만6천원을 더해 총 3만9천원을 내야한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노점상인들의 생활은 점점 악화될 뿐이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단순히 대국민용 홍보차원에 그치는 대책마련이 아닌 실질적인 생계유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리고 문제점의 또다른 하나는 과연 정부의 이 발표안이 신촌을 건전한 「청소년을 위한 거리」로 만들기 위해서인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연세로 이 일대에 노점상들이 없어진다고 해서 이곳에 청소년을 위한 건전한 문화풍토가 조성되기는 어렵다.

현재 이 일대는 고급 여관들과 유흥업소, 음식점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빽빽히 들어서 있다.

이런 주변 상황만 보더라도 노점상 때문에 이 일대 문화풍토가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논리는 억측임이 자명하다.

이에 대해 구청측은 정작 연세로 주변의 사치·향락 풍토의 주범인 각종 유흥·숙박 업소 등의 난립에 대해서는 「자영업이므로 규제할 수는 없다」며, 「심야영업 단속으로 규제하겠다」고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이런 구청측의 태도는 노점상 철거문제에 창천동 자영업 상인들의 모임인 「지역개발위원회」가 로비활동으로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이곳 연세로 노점상들의 요구는 현자리를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장사품목을 개발하고 마차를 규격화하고 청결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안은 전혀 받아들여 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아무리 모범적인 계획이라도 그 계획안 때문에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계획안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이재춘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먹고 입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더이상 빼앗기지 않고 그들의 힘으로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보인다.

이에 전노련 서울지역 서부지구에서는 인근 연대, 이대, 홍대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연세로 노점상 철거의 허구성을 알리기 위한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문화의 거리」라는 명칭은 새로이 연세로에 붙여질 것이다.

그렇지만 위에서 확연히 드러났듯이, 허울좋은 문화거리 조성안은 정권의 민중 생존권 압살정책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뿐임이 드러났다.

이에 대응하여 신촌일대의 주민들과 학생들은 더 이상 신촌이 「유흥과 소비의 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촌거리 변화에 민감한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더욱 거시적으로는 대책없는 철거를 자행하는 민자당의 민중생존권탄압에 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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