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이화 창립 104주년을 맞이하여 이화를 사랑하는 내외 귀빈을 모신 가운데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자축하며 영광된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찬연한 104년의 이화 역사에 감사드리며 또한 오늘의 이화를 생각하며 내일의 이화를 바라봅니다.

참으로 이화 역사는 이 땅의 역사이며 이화의 헌신은 민족 자존의 궤적이었습니다.

104년의 역사를 하나의 맥으로 이어온 실체가 무엇인가 아무리 되풀이하여 물어보아도 그것은 우리의 삶, 우리의 활동의 뿌리를 하나님 말씀 위에 두고 선한 싸움을 전개하면서 나를 낮추어 이웃을 높이고, 시대에 따라 사회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변혁의 역군으로서 조국을 섬겨온 끈이라고 여겨집니다.

다시 한번 이화전통의 기록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이화 104년은 민족 근대화의 이념적 산실입니다.

이화 104년은 진리를 불밝혀온 참 생명탑입니다.

이화 104년은 헌신과 실천자로서 이웃과 조국을 섬겨온 겨레의 본향입니다.

이화 104년은 여성의 인간화를 통한 전체 인간해방의 본산지입니다.

이화 104년은 속박받고 소외된 모든 인간의 평화의 희망탑입니다.

지금부터 104년전 이화학당이 문을 열었을 때 이 땅의 역사는 암울과 질곡으로 점철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화인은 처음부터 끝없는 도전과 물리침과 세움의 개척자적 삶의 양식을 부여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모험적 선도자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어진 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이화인일 수 없습니다.

올바르지 않는 것을 무기력하게 수용하는 삶은 처음부터 거부하는 것이 이화인의 기개입니다.

이화인은 보다 정당한 것을 건설하기 위하여 부당한 것을 쓸어버리는 자입니다.

식민주의적 침탈에 저항하고 남성 우월주의의 편견도 쓸어버리며 카리스마적 권위주의도 쓸어버립니다.

비인간주의적 모든 세력과 제도를 쓸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이화가 건설하려는 이상향은 하나님의 진리가 확립되고 정의가 바탕이 되고 평화가 물결치는 인간적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는 소외와 억압이 없습니다.

차별과 침탈이 들어설 곳이 없습니다.

오로지 참인간적 민주주의만이 숨쉬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화가 이 공동체의 성숙함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104년을 달려온 찬란한 역사에 대하여 자긍심을 아끼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찬란한 기록만을 과시해서는 안될 것이며, 겨레와 사회, 그리고 진리에 바쳐졌던 이화의 거룩한 기여만으로 자족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의 모든 이화인들은 겸허하게 자기에게 묻고 응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화인다움의 지성으로 얼마나 판별력의 혜안을 가졌는가, 이화인다움의 개척적·창의적 의지력과 능력을 가다듬는 데 얼마나 스스로를 채찍질하였는가, 이화인다움의 헌신과 사랑으로 얼마나 이웃과 겨레를 섬겼는가 하는 물음과 응답입니다.

우리는 참인간주의를 위하여 모험과 개척의 창립자였던 스크랜톤 선생님과 그 시대의 선배들의 정신을 얼마나 이어 받았으며, 조국의 근대화, 여성의 근대화를 위하여 헌신하셨던 김활란 선생님을 비롯하여 그 시대의 많은 스승, 선배들의 강고한 의지력과 실천력을 얼마나 이어받았으며, 끝없는 조국애와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앞장서셨던 김옥길 선생님과 선배들의 높은 뜻을 얼마나 받들었는가, 참으로 우리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깊은 사념과 통찰력이 요구됩니다.

오늘 우리 시대 이 사회는 축적되어 있는 우리가 풀어야할 역사적 숙제가 있으며, 치유되어야 할 역사적 상처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골깊은 불신,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 도덕성과 정당성의 상실, 민족 분단의 고뇌, 이 모든 것이 우리 시대에 풀어야 할, 치유되어야 할 숙제인 것입니다.

우리 이화인들은 우리 시대의 이 고통을 끌어안고 펴오하의 방법으로 이 숙제를 헤쳐 가는데 기폭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화인은 우리가 사는 사회 문제의 핵심에 대응하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이화인은 이 민족 상흔의 역사에 대하여 참회와 용서로서 갈등을 딛고 공동체의 평화를 성숙시키는데 기폭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오늘 우리 사회에는 과소비와 탐욕에 찬 재산생활, 그리고 분수에 넘치는 물질적 타락생활로 민족의 경제를 좀먹고 사회를 현란하게 어지럽히는 부도덕함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화인, 이화출신들은 이러한 허상과 부도덕성을 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또한 우리 시대는 「총체적 대전환」을 요구하는 21세기의 문턱에 서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유로우며 어울려 사는 문명의 세계가 문을 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화인은 이 새 역사의 주인이 되며 선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군더더기 껍질을 벗고 나비처럼 날아 향기로운 공동체 형성에 주역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이러한 이화의 오늘과 내일을 지향하고, 우리 시대, 우리의 몫을 다하기 위하여 더욱 학문 연구와 탐구에 정력을 바쳐야 하며, 진리를 경배하여, 평화가 춤추는 공동체를 향해 진취적 신앙적 열정으로 실천의 헌신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 속에 약속의 터전으로 자리잡게 될 이화, 그 영원한 이화 위에 하나님의 지극하신 축복을 기원합니다.

1990년 5월 31일 총장 정 의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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