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극적 승리에 대해 조금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진실이 지하에 묻히면 자라납니다.

그리고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것입니다.

내가 취한 행동은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서두르기 위한 혁명적 조치입니다…. 다만 청천백일하에 나를 심문해 주십시요!』 프랑스 참모본와 국방부가 온갖 날조된 혐의로 드레퓌스를 죄인으로 만들고 군부과실을 은폐하려 할 때 군부를 질타하고 나선 에밀졸라의 글이다.

에밀졸라를 비롯한 지식인의 외침은 사기와 협잡, 편견과 책동으로 치닫던 드레퓌스 사건을 진실의 승리로 이끌었고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참다운 지성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이 이야기는 주로 「진리의 승리」라는 미사여구와 함께 종종 사용되는 예이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온갖 비리와 폭압을 자행하는 독재정권의 광포함은 독재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던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기에 이르렀고 이에 대한 저항마처 무참히 짓밟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치판단을 유보한 채 침묵을 지키는 것이 과연 지식인의 임무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4.19혁명 당시 지식인의 역할을 기억할 수 있다.

특히 교수님들의 성명발표와 시위동참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독재철폐를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를 개선하는데 비판적·실천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인의 임무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화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박정희 정원의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에도 전두환독재가 기승을 부릴때에도 교수님들은 작은 분노조차 보여주지 않으셨다.

교수님들의 이런 조용함은 때로 「가치중립적」이니, 「비정치성」이니 하는 말로 미화되기까지 했다.

이런 이화에 105년의 침묵을 깬 교수님들의 시국기도회와 현사회에 대한 입장발표는 그동안 바른 지식인상을 목말라하던 우리들에게 단비처럼 다가왔다.

아직은 작은, 그래서 아쉬운 움직임이지만 사회참여의 길로 내디딘 교수님들의 첫걸음이 커다란 외침으로 이어질때야 비로소 이화에서 「시대의 양심」은 찾아질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오유선 기자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