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교육, 이젠 분단선 너머 여성들에게도 전파되길”
“이화 교육, 이젠 분단선 너머 여성들에게도 전파되길”
  • 김동건 기자
  • 승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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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통일 교육 패러다임, 장기 로드맵 설정 등 필요해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걷고 있다. 사진=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홈페이지

  4월27일,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회담이 성공리에 끝나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고 이에 남북교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중대한 역사의 기로에 서있는 지금, 여성 교육의 산실 이화는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본지는 통일학연구원장 김석향(사진) 교수를 만나 북한 여성 인권 전반 및 북한 여성 교육에 대한 이화의 사회적 책무 등을 들어봤다.  

  북한이탈주민 10명 중 8명이 여성이라고 들었다. 북한의 전반적인 인권이 열악하지만 그 중에서도 여성의 인권이 더욱 처참하다고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상황이 어떠한가?

  북한은 15일에 한 번씩 식량 배급을 진행해왔는데 1990년대에 들어 배급이 끊겼다. 그 후 밥상 위에 먹을 것을 올려놓는 것은 여성의 책임이 됐다. 남자는 월급, 배급을 주지 않아도 무조건 직장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감시망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여자들이 산으로 가서 나물도 뜯고 나무껍질도 벗기고 뭐라도 만들어서 팔고 살아왔다. 그게 1990년대 김정일 체제 하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게다가 집안에 누가 아프거나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도 모두 여자의 책임이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브로커들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 아니면 아예 직접 브로커를 찾아가 나를 팔아 달라며 가격을 제시하고 돈을 받아 남은 가족들에게 주고  탈북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중국 한족 남자들과 매매혼을 하게 된다. 한 자녀 정책으로 성비가 맞지 않아 결혼을 못한 중국 농촌의 한족 남자들이 비싼 중국 여성 대신 북한 여성을 싼 값에 사오는 것이다. 열악한 북한 사회가 여자들을 밀어내니 탈북자의 절대 다수가 여자일 수밖에 없다. 여러 번 팔린 사람도 있고 14살에 팔려 15살에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중국으로 먼저 탈북 하는 것일텐데 어쩌다가 남한까지 오게 되는가?

  중국에 거주했던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분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불법으로 넘어왔으니 주민등록증이 없는 것이다. 중국은 탈북자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주지 않으려 한다. 신분증이 없으니 병원도 갈 수 없고, 기차 등 교통수단을 탈 수도 없다. 최악의 경우 중국 공안이 와서 잡아갈 수도 있는데, 공안에게 걸린다면 무조건 북송이다. 따라서 중국에 거주하는 동안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올 때 보통 태국을 거쳐서 오는데 태국에서 비행기를 태워야 하니 임시 신분증을 만들어준다. 한국에 오면 6개월 후에는 여권도 만들 수 있다. 한국행 비행기에서 사용했던 임시 신분증을 다시 반납해야 새로운 신분증을 받을 수 있는데, 국정원 직원들이 다시 수거하려 하면 탈북자들이 그걸 주면서 가슴 아파해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당연한 신분 확보가 그들에겐 소중한 것이다. 

  북한 이탈 여성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새로운 여성 가치관과 마주하게 될텐데, 어느 정도로 수용 하는가

  화를 내는 탈북 여성도 있었다. 남한 여성들이 너무하다, 남자를 너무 함부로 대한다고 분노했다. 왜 남자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되냐고 반문하면 ‘그냥 안 된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또, 북한에서 여자로 태어나서 억울하다고 느껴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거의 없다’고 대답한다. 억울했다고 답한 딱 한명 젊은 여성 탈북자가 있었는데, 그 억울함을 어떻게 해소하기 위해 할머니에게 갔다고 답했다. 할머니가 “할 수 없다. 그냥 참아라”라고 말해서 그 때부터 참고 살았단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그런 것을 참지 않아도 된다고 답해줬다.

  이렇게 남한에 도착하는 탈북 여성들에게 의문을 갖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의문을 자신만의  논리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 역할을 이화여대가 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이화여대에 있는 새터민 학생들만이라도 말이다.

  사회주의 체제는 오히려 남녀평등을 강조하지 않나?

  그렇다. 심지어 법률도 있다. 사전 설명 없이 탈북 여성들에게 ‘북한이 남녀평등 사회냐’고 질문하면 다들 ‘네’라고 답한다. “김일성 수령님께서 1948년에 남녀평등권 법령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 불평등이 굉장히 심각하다. 집안에 아들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 가면 남자가 회장 여자가 부회장인 경우도 다반수다. 또, 북한은 청소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없어 학교는 학생이 직장은 직원이 청소를 하는데 그 때도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자가 청소를 하고 있으면 남자가 발을 걸면서 ‘재수 없이 여자가 남자 앞을 지나간다’고 모멸감을 주는 경우도 있고.

  김여정이 노동당 부부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지도자의 혈연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에서 여자는 그런 직위에 오를 수 없다. 그렇게 북한 여성들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그렇게 살라는 것은 참 잔인하다. 그래서 통일이 필요하다. 최소한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렸던 삶의 기회를 저 사람도 누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화여대가 남북교류시대를 맞아 어떠한 사회적 책무가 있는지 짚어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화여대는 분명 북한 여성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야 할 당위성, 사회적 책무가 있다. 1886년에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개교했을 때는 분명 남북이 없었다. 1945년에 해방이 될 때까지 우리가 분단이 된다는 생각을 아무도 못했을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분단이었기에 당연히 북한 지역에도 당시 이화여전 졸업생들이 있다. 제주도, 부산에서 이화여전을 진학했듯 평양, 함경도에서 진학한 학생도 있지 않았겠는가. 납북을 당했거나, 월북을 했을 수도 있고,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분단이 됐을 수도 있다. 다양한 이유로 북한에 남게 된 이화여전 졸업생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북한의 대표단으로 갔을 때, 한 북한 사람과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차를 마시다 대학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이화여대를 나왔다고 하니 정말 놀랐다. 그 분이 어릴 적 살던 마을 근처에 이화여전 출신 의사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선생님은 모두가 포기하는 환자를 끝까지 살려내신 분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꽤 많다. 탈북자 중에서도 꽤 나이 드신 분이 소싯적 이화여전 나오신 선생님이 말썽 피우던 자신을 교육시켜 사람으로 만드셨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1886년 스크랜튼 선생님이 이 땅 위에 이화를 세운 것은, 여기가 여성 교육을 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화가 어둠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며 만든 것이지. 남한의 여성들은 지금껏 이화여대로부터 질 좋은 교육과 혜택을 받아왔다. 이화의 설립 이념이 남한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실현돼온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화의 설립 이념을 북한 여성들에게도 전파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한 이화의 사회적 책무를 실현할 구체적인 교육 사업이 있을까?

  우선, 이화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되살펴 보고 어둠 속 북한 여성들에게 한줄기 빛을 주는 역할을 환기할 수 있도록 교육 사업이 진행되면 좋겠다. 또, 북한 분야에 대한 대학 내부 전문가도 부족하다. 물론 이화여대는 대학 중에서 잘 갖춰진 편이지만 여전히 북한, 통일 등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고있다. 또, 앞으로 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시간과 자본을 들여 로드맵을 짜고 자료를 준비할 필요도 있다. 통일의 날을 맞아 실시하는 이벤트성 행사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술 연구에 있어서 예컨대 북한 여성의 지위에 대해 논한다면, 10년 로드맵을 세우는거다. 그래서 첫 해에는 자료 수집하고, 2년째에는 심층 연구를 하고 10년째에는 어디까지 도달하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학생 차원에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 손해 보기 싫으니 통일이 안됐으면 좋겠다는 말은 모순이다. 일단 학생들은 통일이 나에게 손해가 될지 이익이 될 지도 모른다. 관심도 없고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나 살아있는 동안 싫다는 것은, 언젠가 통일을 하긴 해야하는데 내 후손은 손해를 봐도 된다는 것인가? 이 상처를 잘 다독여야 하는데 통일을 미루면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이고 손해는 더욱 막심해질 것이다.

  또, 북한 여성의 일상적 인권의 실태는 심각한 상황이다. 통일이 필요 없다는 것은 그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서운 발상이다. 분단선 너머에 있는 여성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은 북한 여성들을 동료나 형제라고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사고의 확장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