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상담인식개선, 또래상담 활동… 미국 대학 정신건강에 활력 불어 넣어
[해외취재] 상담인식개선, 또래상담 활동… 미국 대학 정신건강에 활력 불어 넣어
  • 미국=전혜진 기자
  • 승인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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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정신건강, 美 대학에서 방향을 찾다 ③ 학생 주도 활동으로 지키는 정신 건강

  지난 2주간 국내대학 학생상담센터 현주소와 미국대학 학생상담센터 체계를 다뤘다. 여러 대학 사례를 살펴보며 대학이 학생의 정신건강을 돌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를 위해 학교 당국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이렇듯 대학생 정신건강 문제에 학교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수지만, 학교의 지원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학생공동체에서도 정신건강 문제를 더 주의 깊게 살펴보고 관심을 가져야 더 활발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 대학생 정신건강 해외취재 마지막 기획인 이번 호에서는 미국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관련 학생 자치활동을 알아본다. 프린스턴대학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 하버드대학교에서 대학생 정신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취재했다.

 

▲ 프린스턴 정신건강주간 사전행사로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을 선보이는 닐 힐본 사진=전혜진 기자 diana7737@ewhain.net

학교와 협력해정신건강주간준비해

  겉보기에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프린스턴대 알렉산더홀 리차드슨강당. 2월13일 오후6시(현지시간), 이곳에선 프린스턴 정신건강동아리 MHI(Mental Health Initiative) 주관의 ‘정신건강주간’ 사전행사가 한창이었다.

  정신건강주간은 MHI가 매년 대학심리센터와 함께 주최하는 행사다. 이 주간에 학생들은 익명으로 대학에서의 좌절과 성공경험담을 종이에 적어 학교 건물 내부 벽면에 전시하고, 정신건강관련 힙합공연, 명상과 대화 등에 참여한다. MHI는 정신건강주간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일주일 전 사전 행사를 진행한다. 사전행사에서는 예술 공연이나 오픈마이크(자유발언대) 등이 마련된다.

  이날 MHI는 사전행사로 시인 닐 힐본(Neil Hilborn)을 초대했다. 그는 2013년 유튜브(Youtube)에 자신의 강박증을 다룬 슬램시(slam poet:역동적으로 낭독하는 창작 자유시) ‘OCD(강박장애)’를 게시해 약 1400만의 조회수를 올린 유명인사다. 자신의 정신건강 관련 시를 다수 창작한 닐을 보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강당은 빠르게 찼다.

  슬램시 공연은 큰 호응을 얻었다. 닐은  ‘OCD’를 비롯한 여러 시를 낭독해 갈채를 받았다. 질의시간에 “시를 통해 정신적 문제를 이겨냈는데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방법을 추천하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시를 어릴 때부터 써와서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맞을지는 모르겠다”며 “자신만의 감정 표현법을 찾는 것이 좋지만 자신의 정신건강 문제를 표현하기 꺼려지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사전행사로 이 자리를 마련한 까닭은 무엇일까. MHI 누한 이브라힘(Nourhan Ibrahim)씨는 “닐의 시는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반영한 만큼 강한 감정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며 “이런 행사를 통해 학생정신건강 담론장을 만들고 관련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MHI의 공동회장 나뎀 데미안(Nadeem Demian)씨는 “프린스턴에서는 지난 2년간 두 명의 학생이 자살한 만큼 정신건강문제가 중요한 화두이기에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유펜 Active Minds 공동대표 메가 나가스와미와 사라 고밀리 사진=

상담 인식 개선에 직접 나서다

  펜실베이니아대(유펜)는 지난 5년 간 일련의 비극을 겪었다. 2013년 2월, 1학년생 매들린 홀러란(Madeline Holleran)이 학교에서 자살한 이후 14명의 학생이 더 자살했다. 올해도 세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유펜에는 ‘Penn Face(펜의 얼굴)’이라는 단어도 생겼다. 이는 겉으로는 완벽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학교와 사회생활에 심한 압박감을 느끼는 그들의 민낯을 의미한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상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정신 상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펜 액티브마인즈(Active Minds)는 상담 인식 개선 및 정신건강 교육 동아리다. 우울증을 숨겨왔던 오빠의 자살을 경험한 유펜 학생 앨리슨 말몬(Alison Malmon)이 2003년 처음 만들었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오명을 없애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빠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동아리를 설립했다.    

  유펜에서 처음 시작된 액티브마인즈는 현재 미국 전역 대학에 400개 이상의 지부를 둔 대형 단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유펜에서는 몇 년간 활동이 정체됐었지만 5년 전 자살 사건을 겪으며 다시 시작됐다. 액티브마인즈 공동대표 메가 나가스와미(Megha Nagaswami)씨는 “자살 사건 이후 캠퍼스 내 정신건강 동아리들이 성장했고 학생들 또한 이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액티브마인즈는 정신건강 관련 토론, 잡지 제작, 거리에 칠판을 두고 상담의 부정적 인식을 없애자는 메시지를 적어 놓은 ‘Chalk out Stigma’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액티브마인즈의 모든 활동이 정신건강 인식 개선 관련 있는 만큼 그 중요성을 물었다. 공동대표 사라 고밀리(Sara Gormley)씨는 “학생들은 수업이 힘들거나 학교가 사는 곳과 멀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스스로를 돌보고 필요할 땐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신건강은 정신질환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이는 곧 행복과 직결되므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적 지지부터 또래상담까지, 돕고 돕는 학생들

▲ 프린스턴대 AMF의 ‘Before I die’행사 모습 제공=AMF

  정신건강 문제를 특히 중요하게 여기고 학생들의 인식이 높은 만큼, 유펜 학생들은 다양한 정신건강 동아리에서 활동한다. 그 중 AMF(Actively Moving Forward)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학생을 위한 정신건강지지 동아리다.

  AMF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대학생 3명 중 1명은 지난해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사망한 경험이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2004년, 조지타운대 학생이던 데이비드 파젠바움(David Fajgenbaum)이 뇌종양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2년 후 그는 사랑하는 이의 투병이나 죽음으로 고통을 경험하는 대학생을 위한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는 이 모임을 ‘AMF’라 불렀는데, 그의 어머니 이름인 ‘Anne Marie Fajgenbaum’의 앞 글자이자 ‘Ailing Mothers and Fathers(병든 어머니와 아버지)’의 앞 글자를 따 만든 이름이다. 유펜AMF는 2008년 만들어졌다.

  AMF는 이제 ‘Actively Moving Forward(적극적으로 전진하기)’의 약자로 불린다. 유펜AMF의 공동회장인 한나 레쉬(Hannah Rash)씨는 “사별의 슬픔에 침체돼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고 새 삶으로 적극적으로 전진하자는 동아리의 뜻을 담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 동아리를 설명하는 AMF공동회장 한나 레쉬(Hannah Rash)씨 사진=전혜진 기자 diana7737@ewhain.net

  한나씨는 남동생을 자살로 잃고 유펜AMF에 들어왔다. 자신의 정신건강 회복과 심리적 지지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는 “나 자신을 위해 들어갔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AMF를 통해 심리적 회복을 얻는 학생들이 많다. AMF의 주 활동은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자유롭게 나누는 것이다. 동아리원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경험을 공유하고 울고 웃는 감정의 표출을 통해 서로를 북돋고 스스로를 치유한다. ‘인식의 날(Awareness Day)’ 행사도 연다. 이는 죽음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작년에는 ‘내가 죽기 전에(Before I die)’라는 활동으로 학생들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이기도 했다.

  한나씨는 “AMF 활동으로 학생들은 어두운 시기에서 빠져나와 점점 회복중이다”라며 “비극에서 벗어나는 주된 힘은 행복이다. 우리는 캠퍼스 내 슬픔에  빠져있는 학생들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대학생들이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 갖고 참여해야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정신건강 상태를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평소 육체건강에 많은 관심을 갖고 돌보는데 반해 왜 정신건강은 그만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 하버드대 Room13의 주 상담실 모습 제공=Room13

  정신적 유대로 서로를 지지하는 데서 한 발 나아가, 직접 상담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야심한 새벽, 누군가 캠퍼스 건물 지하에 위치한 방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자 한 학생이 긴장한 얼굴로 들어온다. 학생을 푹신한 소파에 앉히고 기운 낼 수 있는 간식을 준다. 조금 진정이 된 학생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상담실로 자리를 옮긴다.

  하버드대 또래상담동아리 ‘Room13(13번 방)’이 매일 하는 일이다. 존 하버드 동상에서 도보로 1분 정도 떨어진 테이어 홀(Thayer Hall) 지하로 내려가 복도를 따라 쭉 걷다보면 Room13이 보인다. 이곳 동아리원들은 학기 중 매일 오후7시~오전7시까지 남녀 또래상담사 2명이 번갈아가며 상담을 진행한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따로 예약하지 않고 필요할 때 이곳에서 또래상담을 받을 수 있다.

  내부는 크게 세 공간으로 구분된다. 들어가자마자 마주하는 곳은 상담 대기 장소다. 왼쪽 ‘벙크룸(Bunk room)’은 보조상담실이자 상담자들의 휴식을 위한 이층침대가 놓여있다. 또 벽에는 24시 응급전화번호와 Room13의 상담전화번호도 적혀있다. 마지막 오른쪽 방은 주 상담실이다. 대부분의 상담이 이뤄지며, 내담자의 안정을 위해 푹신한 소파와 쿠션, 인형이 놓여있고 벽에는 그림이 걸려있다. 뒤쪽에는 어두운 천이 붙어있고 따뜻한 색감의 조명까지 은은하게 밝혀져 있다.

  Room13의 공동대표 빌리 슈밋(Billy Schmitt)씨는 “이곳을 따뜻하고 아늑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학생들이 찾아왔을 때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꾸몄다”며 “상담을 받지 않더라도 이곳에 들러 쉬다가 간식을 먹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

  역사도 깊다. 1971년 1월4일 마가렛 맥케나(Margaret McKenna)라는 학생에 의해 약물중독 상담실로 처음 시작했다. 약 50년의 역사를 가진 이 동아리는 과거 매더하우스(Mather House) 13번방에 위치해 지금까지 ‘Room13’이라 불린다. 상담자는 친절하고 열린 마음, 엄격한 비밀 유지와 내담자를 평가하지 않는 자세가 요구된다. 현재 Room13은  경제적, 민족적 배경이 다른 약 35명의 남녀로 구성돼 있다.

  Room13은 하버드대 상담정신건강센터 소속이다. 상담관련 특별 자격이 없어도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이유는 Room13의 상담자들이 하버드 상담정신건강센터의 전문가로부터 상담과 또래관계에 대한 교육을 꾸준히 받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비밀 보장’이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그들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한다. 때문에 취재차 찾아간 방문에서도 사진 촬영이 불가했다. 공동대표 사브리나 우(Sabrina Wu)씨는 “상담에 있어 공감, 경청보다 중요한 것은 비밀 보장”이라며 “내담자에게 이는 상담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상담 수요를 물었더니 빌리씨는 “구체적인 수치는 말할 수 없지만, 상담자로 일하는 날은 항상 바쁘다”고 말했다. Room13 활동의 장점을 묻자 빌리씨는 “우리는 학생들이 자신의 심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는 ‘백지(blank slate)’”라며 “도움이 필요한 이를 위해 귀를 기울이는 것은 매우 보람 있고 시야를 넓히는 경험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