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비결? 말도 안 되는 제보라도 무시하지 않는 거죠
특종 비결? 말도 안 되는 제보라도 무시하지 않는 거죠
  • 한채영 기자
  • 승인 2018.0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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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실체 파헤친 시사IN 김은지 기자
▲ 한국 기자상을 수상한 시사IN 김은지 기자. 국정농단의 실체를 파헤쳐 많은 특종을 보도했다.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광장의 촛불집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한국 현대사에 큰 획으로 남을 연대기였다. 영화보다 영화 같았던 탄핵 드라마,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던 그때 누구보다 활약했던 이가 있다. ‘안종범 업무수첩’, ‘최순실 일가 대포폰’, ‘삼성 장충기 문자 메시지’ 등 굵직한 특종을 연이어 보도한 시사IN 김은지(정외‧09년졸) 기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관련보도로 지난해부터 한국기자상 등 국내 유수의  언론보도 관련 상을 휩쓸어 더는 받을 상이 없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다.

  탄핵 후 1년, 서울 중구 중림로 시사IN 편집국에서 김 기자를 만났다. 올해로 10년 차 기자인 그는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2016년부터 현재까지 온 국민에게 국정농단 사태를 알렸던 그의 보도는 결코 가볍거나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국정농단의 전말을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그가 대학생 시절 처음 기자가 되기로 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김 기자는 직업으로도 그 관심을 이어가고 싶었다.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맞닿을 수 있는 직업, 제게는 그게 기자였어요.” 당시를 추억하며 김 기자는 답했다. 흥미와 우연이 겹쳐 걷게 된 길이었지만, 기자가 된 그의 글은 이후 대한민국을 묵직하게 뒤흔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2009년 10월 시사IN에 입사한 직후에는 여타 일간지와 달리 격주로 잡지를 발간하는 업무 사이클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일간지 기자는 관습적으로 주어지는 일을 통해 업무를 익히는데 주간지는 그렇지가 않거든요. 스스로 기삿거리를 발굴해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이 스트레스였어요. 일간지에 취직한 친구들은 하루하루 뭔가를 해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당장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상대적인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죠.”

  하지만 처음 그를 힘들게 했던 주간지의 특징은 곧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한 주제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심도깊게 파고드는 것에 익숙해 지니 도리어 취재의 묘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끈기 있게 파편화된 정보들을 모은 결과 취재의 방향이 보였고 곧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자의 덕목이 다른 무엇도 아닌 끈기임을 강조한다. 하나의 사건을 계속해서 감시하는 것, 끝까지 잊지 않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기자인 그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지침이다.

  그의 끈기가 빛을 발한 사건이 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모든 언론사가 취재 경쟁에 뛰어들었던 그때 김 기자를 포함한 시사IN 특별취재팀은 수고로운 발품을 마다하지 않았다. 끝의 끝을 파고드는 집요함을 발휘한 결과는 남달랐다. ‘안종범 업무수첩’ 기사 외에도 ‘삼성 장충기 문자 메세지 단독 입수’, ‘최순실 일가 대포폰 입수’ 등 단독 보도와 특종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특별취재팀에게 수많은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안종범 수첩 입수’ 기사다. “저희끼리는 종범실록이라고 불러요. 최근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가 수첩 51권 안에 모조리 적혀있었거든요.” 웃으며 말한 김 기자는 당시 상황을 되짚었다.

  취재 초반 막 특별수사팀을 꾸렸을 때 그는 안종범 수첩과 같이 국면을 전환할 새로운 이슈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있어서 시사IN은 이미 한겨레, TV조선 등의 여타 언론에 뒤처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기자를 비롯한 취재팀은 꾸준히 취재를 이어나갔고, 우연히 안종범 수첩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됐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취재팀 내에서 가능하면 전권을 모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처음에는 12권이었던 게 15권, 19권이 됐고 최종적으로 51권 전권을 모을 수 있었죠.”

  입수된 수첩에 적힌 내용은 놀라웠다. 2014년 6월부터 2016년 10월 안종범 본인이 구속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지시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던 것이다. A4 용지로 무려 1660여장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이전까지는 ‘설마 대통령이 그랬겠어’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수첩의 실물을 보자마자 ‘아, 실제로 지금까지의 국정이 불법적으로 이뤄졌었구나’하는 깨달음이 단번에 왔어요.”

  수첩을 입수한 취재팀은 안종범 수첩 내용과 실제 상황을 면밀히 비교했다.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대기업을 상대로 한 구체적인 모금액수, 민간 기업 인사 계획 등 위법・탈법 행위를 지시하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크로스체크 결과, 수첩에 적힌대로 모든 일이 진행된 것을 확인했다. 이후 안종범 수첩은 국정농단의 결정적인 증거 자료가 됐다.

  좋은 기사를 쓰니 희소식이 뒤따랐다. ‘안종범 업무수첩’ 기사로 2017 관훈언론상 권력 감시 부문상, 민주언론상 본상, 이달의 기자상 및 2018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새롭게 발굴한 ‘삼성 장충기 문자메시지 단독 입수’ 기사로 다시 한번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부문상을 거머쥐었다. 한국기자협회는 한국기자상 심사평에서 “시사IN 특별취재팀이 ‘안종범 업무수첩 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속 보도’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국정농단의 실체를 파헤쳤다”고 상찬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에 대해 언급하자 ‘운이 좋았을 따름’이라며 멋쩍게 답한 그는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지만, 막 특별수사팀을 꾸렸을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초반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 뭐냐면 상식과의 싸움이었어요. ‘설마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했을까’하는 생각들 말이에요.”

  국정원 댓글사건 같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설마...’하는 의심이 앞섰다. 그렇지만 의심이 물음에 그치지 않고 검증과 취재로 이어졌기에 진실에 근접한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가능성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지적 게으름이지만 무시해서도 안 돼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정황과 제보를 확인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니까요.”

  실제로 우리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터무니없었던 가정에서 출발한 의문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추악한 진실로 판명된 사례를 수 없이 목격해왔다. 김 기자가 취재한 51권에 달하는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수첩 속 내용이 그랬고 대통령이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그랬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당장 현장에서는 어떻게 취재해야 할까. 이에 김 기자는 본인 또한 아직 답을 구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수많은 현장을 거친 선배로서, 이에 대한 고민을 끝까지 놓지 말 것을 조언한다.

  “세월호 사건 당시 많은 기자들이 무리한 취재로 비판받았어요. 하지만 기자들이 착각해서는 안 되는 건, 취재를 한 것 자체의 문제가 아닌 취재방식에 문제가 있었기에 많은 국민들이 질타했던 겁니다. 취재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다만 취재한 내용을 기사에 어떻게 담을지, 어떤 기자가 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반영해야 해요. 그런 과정을 무시한 기자는 어느 순간 스스로 괴물이 되어있을 겁니다.”

  길고 길었던 2016년, 2017년이 지나고 어느덧 올 것 같지 않았던 2018년의 봄이다. 여전히 당시 사건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김 기자는 학보 인터뷰 당일에도 움직이고, 취재하고, 기록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계속해오던 취재를 이어나가야겠죠.” 웃으며 답한 그는 2011년 9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 관련 취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권력형 비리 사건을 많이 맡게 됐는데 그와 관련된 문제를 계속해서 발굴할 것 같아요.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계속 취재하다보면 무언가가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