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각개의 추한 민낯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온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동안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수많은 피해자들과 미투 운동을 응원하며,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 3권을 소개한다.

▲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는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재학생 ㄱ씨는 고 1 때 겪었던 일을 아직까지 지울 수 없다. “고 1 때 요양병원에 봉사를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제가 맡은 일은 환자가 머무는 병실은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봉사를 하던 도중, 병실에 있던 할아버지가 제게 말을 걸었어요. 봉사하러 왔냐, 어디서 왔냐, 예쁘게 생겼다. 처음에는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었죠. 이후 할아버지는 제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셨고, 전 시키는 대로 다가갔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제 손목을 끌어당겼고 신체에 접촉을 시도하셨어요. 놀라 뿌리치고 나왔지만 이후로도 계속 그 일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끔찍한 경험을 할 확률이 매우 높다. ㄱ씨의 사례처럼 수많은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피해는 책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홍승은. 동녘출판. 2017)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과 주변인이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이기에 경험했던 차별과 편견, 폭력을 적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쑥 올라오는 분노를 자판에 쏟아내듯 쓴 글도 있고, 공개해도 될지 망설이다가 손끝을 겨우 움직여 쓴 글도 있다. 뜨거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은근한 깨달음이 주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혀서, 위로받은 밤이 고마워서 쓴 글도 있다. 행간에 스며 있는 거친 내 감정 결을 보노라면, 숨기고 싶은 만큼 꼭 말해져야 한다는 확신도 든다. 내 감정은 결코 사소하지 않고, 내가 겪은 일은 나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성으로서의 상처를 독자와 공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나간 경험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 불편함의 실체를 확인하라고 권한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거나 애매했거나 또는 애써 외면했던 불편한 것을 똑바로 응시해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당신의 이야기와 상처를 들려달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는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에 불편할 수 있는 건, 어떤 존재가 눈에 걸리적거릴 때이다...그래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딸꾹질한다.”

 

  △당신이 겪은 일,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럼에도 본인이 겪은 피해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ㄱ씨 또한 병원에서의 일을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이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신고 후 이어질 법적 공방도 두려웠고, 부모님이 상처받으실 것도 걱정됐으며 무엇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혼자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그 일이 생각나요. 요즘의 미투 운동을 보면서도 그 때 신고했어야 했나 괴로운 마음이지만 역시 주변 사람들이 아파할까봐 말할 수 없어요.”

  성범죄 피해 여성이 용기와 인내로 사건을 고발했을 때, 우리 사회는 가해자를 향해 범행 동기를 묻는 대신 피해자에게 왜 범죄피해를 입었는가를 따지곤 한다. 왜 늦은 시간에 외출했으며, 어쩌다 술은 마셨고, 무엇 때문에 옷은 그렇게 입었는가. 어째서 남성을 따라갔고, ‘최선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으며, 무슨 저의로 이제야 고발하는가. 그러고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판단했다. 그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강간은 강간이다(조디 래피얼. 글항아리 출판. 2016)에 등장하는 성범죄 피해자 트레이시 또한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건 내가 멍청하고 헤픈 여자라는 뜻이니까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아서 강간당한 거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탓이 되고 마는 거예요. 똑똑한 여자는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으니까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웠어요.”

  하지만 저자는 강간은 강간이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강간은 강간이라고 선언한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침묵하도록 하는 유일한 범죄라는 것을 지적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피해자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강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끔찍해요. 그런 사건을 겪은 피해자가 사람들, 가해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자기를 의심하고 혐오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 거잖아요. 주변에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그 사람 편이라고 알려주세요. 명백히 잘못된 일을 목격했다면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침묵을 지키는 것은 중립이 아니에요.”

  “침묵이나 비난, 싸움에 맞서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절대 당신 잘못이 아니라 는 거예요. 치마가 얼마나 짧든, 추파를얼마나 던졌든, 가슴골을 얼마나 드러냈든, 어디에 가고 누구와 함께 있었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하지 않았든, 어떤 반응을 보였든 상관없어요. 스스로에게 계속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세요.”

 

  △우리의 한마디가 사회를 바꿀 때까지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로,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는 미투 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잊은 듯 살아온 피해자들은 서로 용기를 북돋고 연대하며 미투 운동에 힘을 싣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투 운동에 대해 여전히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여혐민국(양파. 베리북 출판. 2017)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여성문제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났다. 여자들이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어딜 가나 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가깝기 때문에 차별은 더 제도화 되고 본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환경 문제? 심각하다. 가난? 큰 문제다. 청년 실업?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성차별 해소 역시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이어 저자는 현재의 미투 운동이 단기간에 그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것임을,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가 모여 큰 외침으로 사회를 뒤흔들 것임을 강조한다.

  “누군가는 그저 하소연을 하고, 누군가는 가해자와 맞서 싸운다. 애기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설득하고, 고발하고, 고소하고, 욕하고, 덤비고, 뒷담을 한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해결을 보고 누구는 사과를 받는다. 누군가는 주위의 압박에 반발을 포기하고 누군가는 ‘세상이 이렇게 생겼나 보다’하고 손을 놓아버린다. (...)그러는 동안 사회는 조금씩 바뀐다. 몇 밀리미터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에 대해 묵인하지 않고 시끄럽게 난리치는 이들 덕분에, 차별을 그저 개인적인 불운으로 이해해야 했던 여자들은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하게 나쁜 경험을 했으며 이를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싸워서 바꿀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구심점에는 하나의 분함과 서러움이 수많은 점으로 더해지고 분노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중력이 생긴다. 부조리함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이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짧더라도 우리가 한 마디를 보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빌려 그 동안 원치 않는 침묵을 강요받았던 이들이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 사회의 불합리에 소리낼 수 있기를 응원한다.

  “우리에겐 소심한 한마디일지 몰라도, 그 한마디가 모여 사회를 바꿀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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