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죽음에 대한 동경은 미투 본질 흐릴 뿐

  한 성추행 용의자가 경찰이 진상 조사에 착수하기 전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는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종결됐다. 결국, 다시 피해자만이 남았다.

  당신은 미투(#MeToo) 운동이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그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다. 가해 사실이 밝혀지면 죽고 싶어질 정도로 성추행이 수치스러운 범죄라는 걸 알고 있었는가.

  누군가는 이번 일을 인터넷상의 ‘마녀사냥’이라 칭한다. 마녀사냥은 애초에 마녀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박해당한 무고한 여성들의 역사다. 이번 사건은 본인의 행적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18일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성추행 용의자의 일이다.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사라진 그는 미투 운동에 대한 비난의 시발점이 됐다. 밝혀져야만 했던 일이고, 누군가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피해 사실을 공개했을 뿐인데 누군가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폭로의 책임을 추궁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당했으나 밝힐 수 없었던 일을 숨겨준 사회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피해자들이 나섰다. 결코, 누군가를 향한 복수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죽음은 오롯이 그의 선택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자의 선택으로 다시 피해자에게 불특정다수의 칼이 겨눠졌다.

  물론 그의 선택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가해자를 향한 동정은 피해자를 고립시킬 뿐이다. 문제의 해결 자체를 불능케 한다. 죽음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가해자에 대한 과도한 감정 이입은 상황을 모든 방면에서 악화시킬 뿐이다.

  언젠가 당신은 익명의 증언엔 힘이 없다며 고발하는 이의 신분을 드러낼 것을 요구했다. 어째서 피해자에게만 그토록 엄격한 도덕적 순결을 요구하는가? 전(前) 충남도지사 안희정의 성추행을 폭로했던 비서는 보호를 받고자 방송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왜 피해자들이 숨죽여야만 했는지, 무엇이 그 문제들을 지금까지 숨겨줬는지 직시해야 한다.

  미투 운동이 폭력적이라고 비난하고 싶은가? 피해자들이 좀 더 나긋나긋하게 문제를 폭로했어야 했다고 주장하는가? 피해자들이 지금까지 잘 참았고, 앞으로도 참을 수 있는데 괜히 이제 와 물타기 한다고 생각하는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꽃뱀은 아닌지 검열하는 중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선 곳을 찬찬히 돌아보길 바란다. 과연 당신이 들이댄,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엄격한 잣대는 현재 누굴 위협하고 있는가. 당신도 모르게 가해자의 감정에 이입해 피해자를 등지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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