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고 함께하는 이화나비
내가 기억하고 함께하는 이화나비
  • 정다은(화학신소재・16)
  • 승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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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4일 정문에서 이화안의 수요시위가 열렸다. 수요시위는 27년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매주 수요일 12시부터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평화 집회다. 캠퍼스 안에서 이뤄지는 이화안의 수요시위는 올해로 8회 차를 맞이했다. 사람들 틈에 앉아 참가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뒤에 서서 수요 시위를 지켜보았다. 저녁 즈음 분홍색 구름으로 덮인 이화 교정의 모습과 노란 옷을 입고 있는 나비들, 섞여 앉아 있는 사람들, 발언을 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섞여 있는 것을 보면서 괜히 뭉클하고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구나. 이 곳에 이화나비로서 있을 수 있어서 참 좋다’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이화나비는 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대학생 동아리다. 이화나비로 활동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캠페인 한다고, 대학생들이 모여서 세미나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하지만 내가 변했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이 바로 나이기에 이화나비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

나에게 일어난 수많은 변화들 중 가장 큰 점은 닮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실 그 동안은 ‘누군가처럼 살아야지, 나도 저런 마음을 가져야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 할머님들과 나비들을 만나며 그 마음이 달라졌다. 인권 운동가, 평화 운동가이신 할머님들은 내가 정말 닮고 싶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이 되었다.

최근 미투 운동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용기 있는 고백들을 듣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는 할머님들이 생각난다. 1991년 8월 14일 ‘내가 너무 아팠기에, 다른 사람들은 이 아픔을 겪지 말아야 한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처음 공개 증언을 하신 김학순 할머님을 비롯한 그 이후의 또 다른 수많은 할머님들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어떤 생각들을 하셨을까’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항상 드는 생각은 ‘감사하다’이다. 할머님들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되풀이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할머님들께 위로를 드려야지’ 라는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힘들 때 위로를 받고, 지칠 때 힘을 얻는다. 또한 이화나비를 하며 만난 수많은 나비들! 항상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들을 느낀다. 힘들 때도 웃으면서 그 시간을 넘겨 버리는. 세미나 때 누구보다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멋있는 나비들 또한 누구보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제 이화나비를 시작한지 1년이 된다. 앞으로도 이 땅에 평화가, 할머님들께 명예와 인권이 실현되는 그 때까지 어디에서나 날갯짓 하고 있는 나비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