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가는 관심 속 패럴림픽, 장애 인권에 대한 의식 필요해

  ‘캐나다 CBC 125시간, 영국 채널4 100시간, 미국 NBC 94시간, 일본 NHK 62시간, 한국 KBS 18시간’.

  평창 동계패럴림픽(평창패럴림픽) 조직 위원회에서 발표한 ‘나라별 평창패럴림픽 경기편성시간’이다. 이 한 줄이 담고 있는 것은 단순한 방영시간 뿐만이 아니다. 타국과 많게는 약 7배가 차이나는 한국의 방영 시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패럴림픽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17일 동안 국내 지상파 3사는 총 150시간 이상, 하루 평균 9시간 넘게 경기를 편성했다. 불과 12일 전까지만 해도 온 국민이 아침부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여자 컬링 결승을 응원했고 늦은 밤 화려한 폐막식까지 본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 후 국민들은 패럴림픽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마음속에서 평창을 떠나보낸 듯하다.

  평창패럴림픽에 대한 무관심은 아직도 장애 인권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관심이 아직도 저조함을 나타낸다. 혹자는 “장애인에 대한 대우가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말한다. 과연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상대적’인 목표치만 채워 나가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장애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물론 나 또한 비장애인에 속하지만, 전공과 관련해 만나는 장애인들 혹은 그들의 보호자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고 성인 장애인들의 경우 그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도 종종 봐왔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한결같이 느낀 것이 있다. 장애인들에게는 높은 장애인연금, 장애등급제 폐지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편견 없는 시선’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받아왔다. 그리고 아직도 각 시·도와 여러 기관에서는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강연을 실시하거나 공모전을 개최한다. 사회에서 흔히 약자로 여겨지는 장애인들을 배려해주고 생각해주려는 그들의 의도는 충분이 이해한다. 그러나 과연 이 방법이 장애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더 나아가 ‘장애인들에 대한 역차별이 아닐까’란 고민도 종종 해본다.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절대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또한 그렇다. 계단식 강의실에 따분하게 앉아 듣는 장애인식교육보단 텔레비전 앞에 앉아 패럴림픽 경기를 응원하고, 공모전에 출품할 콘텐츠를 만들기보단 장애인과 함께하는 활동에 참여해 소소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단 한 순간이라도 둘 사이에 놓인 ‘장애’라는 벽을 잊을 수 있다면, 그때부터 우리의 인식이 개선되는 것이며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모여야 비로소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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