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도시에서 변해가는 나의 모습
다양성의 도시에서 변해가는 나의 모습
  • 김지원(환경∙15)
  • 승인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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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대학교(University of Zurich)

  취리히에 도착한 지 3주가 조금 지났다. 알프스와 하이디가 주는 낭만보다는, 새로운 생존 기술을 하나씩 획득할 때의 희열이 아직까지 더 크다. 분리수거를 하는 법이나, 세탁, 요리, 교통카드 등 일상을 온전히 다시 채워나가야 하는 생존의 기간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각종 서류 처리가 남아있지만, 이제는 끼니를 거르지 않고 요리를 하고, 살인적인 물가를 피해 밥을 먹을 수 있는 몇 곳을 알고 있다. 좋아하는 서점이 몇 곳 생겼고, 한인마트 사장님과 말을 텄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했던가. 남들처럼 온 유럽을 돌아다니며 여행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일상을 꾸린 도시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만으로 꽤나 만족감이 크다.

  본업은 공대생이지만 철학이나 생명윤리, 사회규범 등에 대한 강의 역시 듣고 있다. 취리히에는 대표적으로 내가 지금 교환을 와 있는 UZH(취리히 대학교)가 있고, ETH(취리히 공과대학)가 있다. 하지만 이 두 학교는 메인 건물도 나란히 있고 각 캠퍼스가 섞여 도시 전역에 흩뿌려져 있으며, 실제로도 거의 한 학교처럼 유연하게 운영된다. 학생 식당이나 체육시설, 버디 프로그램 등이 모두 공동이다. 내가 듣는 독성학 수업도 사실 ETH의 강의이다. 대형강의는 별 감흥이 없지만, 깊은 토론을 요구하는 4~7인 정도 규모의 수업에서는 아직 어색하다. 다만 기본적으로 취리히라는 도시가 가진 문화적 다양성은 늘 큰 위안이 된다. 어느 수업을 가도 독일어를 못해서 소외감을 느낀다거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정규 학생들 중에서도 이민자, 혹은 외국인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나라 자체도 공용어만 4개에 아주 독립적인 26개의 칸톤으로 이뤄져 있다. 학교에서든, 플랫에서든, 내가 있는 자리면 독일어를 쓰고 있다가도 다들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다들 영어를 잘하지만, 마찬가지로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도 아주 훌륭한 영어를 기대하지 않는다. 덕분에 플랫 메이트들과 일주일에 서너번 꼬박 운동을 가고 밤새 와인을 따며 수다를 떤다. 특히나 내 플랫은 9명이 함께 사는데, 현지인이 6명이고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함께한 활동이 많다. 자연스럽게 그 틈에 끼어서 지질학 단대 파티를 가거나, 스위스의 전통적인 fraternity (*일종의 사교클럽, 협회)도 다녀왔다. 그 외에도 원래 알고 지내던 스위스 친구들 역시 교환 준비 단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옆에서 안부를 물어보고, 종종 만나고 있다.

  이곳에서 석사과정 중인 러시아 언니는 ‘이곳은 유럽의 모든 것의 표준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말 같아 기억에 남는다. 아주 활발하거나 개성이 강렬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게 잘 발달되어있고 사회와 개인의 삶이 균형이 잘 잡혀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초콜릿과 알프스 이외에도 교환학기를 잘 보낼 수 있는 이유가 정말 많은 곳이다. 이제 막 개강을 했다. 앞으로의 몇 개월 동안 이곳과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더 많이 생각이 바뀌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