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서울 한복판… ‘신여성 도착하다’
21세기 서울 한복판… ‘신여성 도착하다’
  • 김승희 기자
  • 승인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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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사진, 대중가요 등 근대기 여성 담은 작품 약 500점 전시
▲ 교육을 받고 있는 1900년대초 여성들의 사진. 이화역사관 소장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나는 인형(人形)이었네/아버지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내인 인형으로/…(중략)/나는 사람이라네/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자녀의 어미 되기 전에/첫째로 사람이라네/나는 사람이로세/…(중략)/아아, 소녀들이여/깨어서 뒤를 따라오라/일어나 힘을 발하여라/새날의 광명이 비쳤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세상에 나온 나혜석 작사의 ‘노라’(1922). 20세기 초 조선의 대표적인 여성지식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나씨의 작품이 21세기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4월1일까지 개최되는 ‘신여성(新女性) 도착(到着)하다’는 국내 최초로 근대기 시각문화를 통해 신여성을 조명하고 있다. 이제까지 남성 중심적 서사로 다뤄졌던 우리나라 역사, 문화, 미술의 근대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박물관 내에는 회화, 자수, 사진, 대중가요, 잡지 등 당시 근대성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여성들을 담은 약 500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이 전시돼 있다.

  시대의 흐름에 비춰 한 편의 서사처럼 구성된 전시회는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1부 ‘신여성 언파레-드(New women on parade)’로 시작해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5인의 신여성’으로 이뤄졌다.

▲ 1920~30년대 발간된 근대기 여성 잡지 <신여성>의 표지 모음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두 공간으로 된 1부는 주로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 매체 등을 통해 신여성에 대한 개념을 고찰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형형색색의 잡지들이 눈에 띈다. 신식 파마머리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 깊은 성찰에 빠진 듯한 모습의 여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 등이 표지를 장식한다. 1920~30년대 개벽사가 발행한 여성 잡지 <신여성>이다. 대중을 교육하고 계몽하는 역할을 했던 근대기 잡지에 주체로 나온 여성의 모습을 보며 여성 독자들이 함께 감정적, 신체적인 자율성과 가부장제로부터의 자유를 꿈꿨음을 엿볼 수 있다.

▲ 이유태의 ‘인물일대(人物一對): 탐구(探究)’(1944)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잡지를 따라 모퉁이를 돌면 근대기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줄지어 있다. 그 중에서도 이유태의 ‘인물일대(人物一對): 탐구(探究)’(1944)는 옥색 한복 위에 흰 가운을 걸친 여인이 당당히 정면을 응시하며 실험실 의자에 앉아 있다. 확신에 찬 눈빛, 단정하면서도 올곧은 자세를 통해 직업을 가진 지식인으로서 현대여성의 이상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교육은 차별적 사회 속에서 여성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20년대 중반엔 여성 중등교육이 제도적으로 정착하고 여학생의 수가 늘어났지만 여성들에게 제대로 된 지식을 가르치지 않던 당시 교육제도로 인해 여성교육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성 지식층들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맞은편 전시장은 여성교육과 계몽을 주제로 한다. 1886년 이화학당, 1906년 진명여학교, 명신여학교(숙명여학교) 등 여성 중등교육기관의 설립은 여성을 ‘문명화된 국민’의 일원으로 교육하는 첫걸음이 됐다.

  한쪽 벽면에 전시된 ‘이화학당 초기의 학생들’(1900년 초), ‘여학생’(1920~30년대), ‘신여성 차림의 여학생’(미상) 등 19장의 흑백사진들은 1900년대 초 교육을 받던 여학생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흑백의 사진 속에서도 뚜렷이 빛나는 학생들의 눈동자는 교육에 대한 그들의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인 태도를 짐작게 한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2부와 3부 전시장이 보인다.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는 현모양처 교육만을 강요하던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용된 사회적 활동이었던 화가와 도화교사의 작품이 소개돼 있다.

  많은 작품 중 실 하나하나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자수’ 작품들이 가장 눈에 띈다. 당시 여성들은 다양한 미술 분야 중에서도 후에 경제적 자립이 쉬웠던 자수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러한 자수 작품들은 회화적 자수 기법을 중심으로 발달해 꽃이나 풀 등의 간단한 문양부터 동물, 인물, 풍경 등의 사실적이고 섬세한 대상들의 모습을 모두 아우르고 있기에 그 가치가 더 돋보인다.

  그림을 매개로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간 동경의 여자미술학교(現 조시비미술대학) 출신의 장선희, 전명자 등은 해방 이후까지 한국 여성 미술교육을 이끌어 가기도 했다.

▲ 전시장 복도의 음악부스에서 근대기 여성들이 부른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어린이 관람객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그림과 함께 노래를 통해서도 근대기 여성들의 활동이 이뤄졌다. 3층 복도를 걷다 보면 헤드폰을 끼고 어깨를 들썩이는 관람객들이 보인다. 복도에 설치된 세 개의 음악 부스에는 각각 사랑을 노래하는 여성, 직업을 가진 여성, 연애하는 여성을 주제로 열두 곡의 노래들이 재생되고 있다. ‘이태리의 정원’(1936), ‘서커스걸’(1937), ‘청춘빌딩’(1938) 등 노래를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한 신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다.

  마지막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는 당시 남성 중심적인 사회적 조건과 분위기 속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대표적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이난영, 문학가 김명순, 여성운동가 주세죽은 각자 분야에서 시대적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 무용가 최승희의 1930~40년대 활동 사진. ‘보살춤’(1942), ‘빛을 구하는 사람’(1931), ‘야외무용’(1933~36) (왼쪽부터).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검은색 무용복을 입고 한쪽 팔을 올리며 광기 어린 눈빛으로 역동적인 자세를 취한 여성이 있다. 무용가 최승희다. 1930년대 최씨는 ‘동양의 무희(舞姬)’라 불리며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중남미까지 진출해 명성을 떨쳤다. 두 다리를 힘껏 벌려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자세를 취한 ‘야외무용’(1933~1936) 속 최씨의 모습은 춤을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표현하던 그의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같은 공간엔 항일운동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주장한 주세죽의 이야기 또한 비디오로 상영되고 있다. 김소영의 3채널 영상 ‘SF Drome: 주세죽’(2017)은 일제강점기 신여성으로 독립운동가, 사회주의 운동가, 혁명가였던 주씨의 유랑을 추적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Socialist Feminist/SF)로서 그가 꿈꿨던 세계는 공상과학(Science Fiction/SF)의 미래사회와 중첩된다.

  “단발을 반대하는 사람의 말은 머리를 여자의 미(美)로 표현하는 것임으로 단발은 여자의 생명인 미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단발과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무산자(無産者)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그는 조선여성해방동맹 설립, 조선공산당 입당, 근우회 설립 등을 통해 그의 이념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출했다. 그의 삶을 본뜬 영상 속엔 불꽃과 함께 우주선이 이륙한 후 산과 대지에 다시 적막이 감돌고 풍선 하나가 조용히 떠간다. 공상과학이 꿈꾸던 기술 진화가 꿈꾸던 세계와 그가 꿈꾸던 사회상이 맞물리는 순간이다. 그가 바라는 순간이 도래할 때까지 풍선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적수공권의 빈 주먹만 쥔 조선의 여성이다. (중략) 지식에 굶주린 우리는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자기 자신까지도 눈뜨고 보지 못하는 가련한 우리이다. 그러나 이 불행이 영원히 있을 것은 아니다.”

  1927년 여성계 통일조직으로 결성된 근우회(槿友會)의 기관지 <근우> 창간사에 실린 대목이다. 자식만 기르는 정도의 수동적 여성의 삶이 계속되진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찬 당대 여성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적극적인 여성의 삶을 외치는 지금 우리네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전시회를 찾은 최혜린(25·여·서울 종로구)씨는 “1부의 흑백사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상상만 했던 그들의 모습을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며 “약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통해 마냥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시회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로도 붐볐다. 장보규(25·남·서울 송파구)씨는 “평소 예술 분야에서 나타나는 여성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아 방문하게 됐다”며 “그림, 사진, 음악 등 여러 종류의 전시물을 통해 한국 역사 속 여성들의 예술 활동을 역동적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고 관람 소감을 말했다.

  바르 토메우 마리 리바스(Bar tomeu Mari Ribas)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한국 근현대 사회에 논쟁의 대상이 됐던 근대 식민기 신여성의 모습을 통해 한국의 근대성을 온전하게 복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