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속 이화를 엿보다

▲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끌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수호랑’이 강릉 올림픽 파크를 찾은 방문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2018 평창 동계올림픽(평창올림픽)을 빛낸 ‘숨은 주인공’으로 약 1만5000명 자원봉사자들이 꼽힌다. 이들은 올림픽 기간 내내 선수들 뒤에서 현장을 누비며 국내외 호평을 받았다.

  그곳엔 이화인들도 있었다. 수많은 이화인들이 자원봉사자, 인턴 등으로 평창올림픽에 힘을 보탰다.

  이번 올림픽의 슬로건은 ‘Passion. Connected.(하나된 열정)’. 모두가 하나된 열정으로 동계스포츠에 대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연결한다는 뜻의 문구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 정신을 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화인이 흘린 땀방울 또한 이 열정을 완성시키는 데 일조했다. 본 기사는 청춘이란 이름으로 더욱 빛났던 이화인들의 올림픽 이야기를 담았다.

  하나의 이슈는 각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다양한 자격으로 올림픽에 참여한 이화인들은 세계인의 축제 속에서 소중한 경험을 하나씩 꺼냈다.

  박윤하(특교·17)씨는 관동 아이스하키센터 검표소에서 봉사를 했다. 티켓을 확인하고 좌석을 안내하는 등의 일이 그가 맡은 업무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가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을 기다리는 관중들을 웃으며 맞이하는 일은 박씨의 적성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17일간 만난 관중들은 한 명 한 명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한 청각장애인이다. “1년 남짓 배운 전공 지식이 올림픽에서 빛을 발할 줄 몰랐어요. 서툴지만 수화를 사용해 ‘검표소를 지날 때 복지카드를 보여주시고, 재입장은 안 됩니다’라고 알려드렸어요. 제 작은 손짓이 직접적인 도움을 줬다는 게 올림픽에서 만든 가장 큰 자랑거리예요.”

  박씨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따뜻한 기운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했다.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응원해 주신 관중들 덕분에 힘들어도 웃으며 일할 수 있었어요.”

▲ 평창동계올림픽의 숨은 주역인 자원봉사자들. 강릉아트센터에서 씨마크 호텔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송유진(뇌인지·16)씨는 선수촌 종합병원에서 통역자로 봉사했다. 외국인 선수와 의사 사이의 소통을 돕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영어엔 익숙한 그였지만 생소한 전문 의학용어들은 단번에 소화하기 버거웠다. 그래서 의료통역에 쓰이는 어려운 단어를 정리한 종이를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종이가 꼬깃꼬깃해질 때까지 외우고 또 외웠다.

  송씨는 “선수들의 증상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배가 콕콕 찌른다’ 같이 통역하기 애매한 표현은 더 신경 써서 전달하고, 모르거나 헷갈리는 부분은 담당 의사에게 질문하면서 다시 공부했다”며 “내 통역을 거친 치료로 선수들이 부상을 회복했던 순간이 제일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번 봉사 경험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어머니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다. 이화 동문인 송씨의 어머니도 30년 전인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에 통역분야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30년의 간격을 두고 이화의 모녀가 올림픽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죠.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올림픽에 참여하며 찍은 사진들을 보며 ‘나도 여러 외국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뤄진 거죠. 이화여대생으로서 엄마와 저 모두 국제행사에서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올림픽의 의미가 크게 다가와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평창올림픽 자원봉사를 꿈꿔온 이화인도 있다. 김윤영(불문·16)씨는 캐나다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사무총장의 의전을 맡으며 그 꿈을 이뤘다. 그는 “평소 보기 힘든 고위직도 만나보고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의전 분야에 지원했다”며 “외국에서 온 귀빈들을 보좌하며 한국에 대해 설명하고 소개하는 일은 앞으로 가고 싶은 길에 도움이 되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 2540㎡(약768평)의 규모를 자랑하는 강릉의 슈퍼스토어. ‘수호랑’, ‘반다비’ 인형을 비롯해 배지, 의류, 식품 등 약1100가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본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학생 91명은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OBS(Olympic Broadcasting Services)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최유영(커미·15)씨는 오디오 어시스턴트(audio assistant) 업무를 맡았다. 경기 시작 전 트랙에 마이크를 설치하거나 케이블을 정리하고 검수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스포츠 오디오계에서 저명한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직업의식을 온몸으로 느꼈다고 했다.

  “올림픽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는지 몰랐어요. 특히 제가 근무한 오디오 분야는 주로 야외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추웠어요. 그런데도 전문가 분들은 장갑 없이 맨손으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더라고요. 텔레비전에 그들의 수고가 직접적으로 비춰지진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것을 관중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마찬가지로 OBS 인턴으로 활동한 이지수(커미·15)씨는 이번 올림픽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던 여자 컬링 대표팀의 경기를 바로 옆에서 접했다. 경기 진행상황 등을 기록하는 일에서 컬링 종목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단의 경기를 직접 기록하지 못한 것엔 아쉬움을 표했지만 바로 옆 시트에서 한국팀이 경기를 할 때면 관중들과 마음을 함께했다.

  “한국 컬링팀 경기가 바로 옆 시트에서 진행될 때면 저도 모르게 눈이 옆 화면으로 가더라고요. 특히 기록을 하는 중 갑작스런 환호소리가 들리면 ‘우리나라 컬링팀이 잘하고 있구나’란 안도감과 함께 자부심이 들었죠. 요즘 새롭게 떠오른 종목인 컬링을 제가 직접 기록하고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본 평창에서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이나영(언론·14)씨는 미국 방송사 NBC에서 평창올림픽 관련 인턴기자로 근무했다. 그는 인턴이 자원봉사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평창올림픽 기자단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시작으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커진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꿈과 올림픽을 연결하는 방송사 인턴으로 일하며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슴 먹먹한 순간을 경험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경기 취재를 나간 바로 그날 첫 골이 나왔어요. 경기의 승패에 관계없이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순간에 기자로 참여한 경험이 뜻깊었습니다.”

▲ 강릉 올림픽 파크 한 켠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잡은 핀트레이더(Pin-trader)들. 수많은 인파가 자신의 핀을 교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올림픽에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여러 문화도 공존한다.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경기장 주위에 곳곳에서 ‘Only Change’란 문구가 쓰인 팻말과 함께 수십에서 수백여 개의 배지를 늘어놓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각자 모은 올림픽 관련 배지(핀)를 교환하는 ‘핀 트레이딩(Pin-trading)’이 성행한 것. 올림픽에서 흔히 즐길 수 있는 핀 트레이딩은 세계인들이 교류하는 장이기도 하다.

  박정미(식영·13)은 평창올림픽 공식후원사 코카콜라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핀 트레이딩 부스를 운영했다. 그는 “핀 트레이딩은 단순히 핀을 바꾸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것”이라며 “각국 사람들이 자신의 추억이 깃든 핀을 상대방과 교환하는 것도 올림픽에서의 큰 추억이 된다”고 했다. 또한, “이 문화가 생소할 수 있지만 한 개 두 개 핀을 교환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들와 문화를 나누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한 중학생은 올림픽 기간 내내 아침마다 박씨가 운영하는 부스에 희귀한 핀들을 잔뜩 가져와 트레이딩을 하기도 했다. 박씨는 “그 친구를 보며 경기뿐만 아니라 자신이 관심 있는 다른 방식으로 올림픽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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