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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민석 호크마 교양대학 교수
  • 승인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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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사라진 그들의 나눔과 배려

  르완다 거리에서 조깅을 하던 재클린 노보그라츠(J. Novogratz)는 불쑥 나타난 소년과 마주친다. 놀랍게도 소년은 어릴 적 그가 즐겨 입다가 재활용센터로 보낸 블루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미국에서 아프리카까지 먼 거리를 여행한 스웨터를 다시 만난 순간, 그는 모든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세우는 ‘인생 순간’이었다. 자본주의의 냉혹한 영리사업을 이끄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전문가였던 그는 이후 자본과 기업인의 역할을 고민하고 부자와 빈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어큐먼 펀드를 설립하게 된다. 어큐먼 펀드는 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비영리 벤처 펀드이다. 이처럼 세상을 보는 방식은 세상을 변혁하는 방향을 결정한다.

  반면 세상을 보는 방식이 제한되거나 왜곡될 때 우리는 편견에 사로잡혀 진실을 놓치게 된다. 사회지도층의 부와 권력은 사회적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한국의 선비정신을 보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롤스(J. Rawls)는 이미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적 정의에 대한 책무로 권장될 뿐 반드시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의 사회적 불균형을 규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분제가 무너진 현대사회에서는 자발적 자원봉사자들이 나눔의 의미를 확산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헌신과 기부문화는 서구사회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으로 강조되고, 한국의 선비 정신은 지도층의 솔선수범 전통으로 그에 비견된다.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약자를 돕고 배려하는 삶의 철학인 선비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여기서 여성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는 방식을 달리해 여성의 시각과 관점에서 살펴보면 선비 정신의 나눔에는 ‘선비’가 보이지 않는다. 청빈 검약한 나눔과 베풂의 선비 정신은 그 뒤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경제적 근심과 걱정을 초월해 접빈객들에게 후한 삶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선비의 도리라고 생각했던 남편과 달리, 살림이 부족하면 옷과 장신구를 팔아 음식을 장만했던 여성들은 길쌈은 물론 버려진 산간도 경작했으며, 경제적 책임을 있는 힘껏 감당해야 했다. 여성은 남성과 빈곤을 다르게, 불평등하게 경험했던 것이다. 자신에겐 인색하면서도 봉제사와 접빈객, 아래로는 종들을 먹이고 빈자들을 알차고 풍성하게 돌보던 나눔과 배려, 보살핌의 행위는 결국 선비가 아닌 그의 부인, 즉 여성들이 쌓아 가는 행위와 공덕이었다. 매 끼니마다 한 숟갈씩 쌀을 덜어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었던 나눔은 그럼에도 선비나 양반 집안에서 가진 것을 함께 하는 전통으로 이해될 뿐, 결코 여성들의 경험과 실천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진정한 나눔 행위자인 여성은 왜 역사 속에서 탈각됐을까? 나눔이 특권층 남성만의 시대정신으로 이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눔의 삶을 이끌었던 여성들의 행위의 의미가 복원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의 시각과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을 세워야 한다.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곳, 이화의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