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서의 연극장르는 가장 공중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남한사회에서는 그 진정한 발전의 길을 걷지 못하고있다.

민족극진영은 말할것도 없이 제도권연극의 대중수용적 측면이나, 그 물질적 표현으로서의 재정적 조건들, 창작극의 부재현상을 살펴보아도 그것은 금방드러난다.

연극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있다는 문화부장관이 입각하여 「연극의 해」를 선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시행정의 구태는 여전하고, 무슨무슨 연극제니하는 행사에서는 검열시비가 끊이지 않고있다.

그럼에도 최근에 연극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경제적 조건이 향상된 지식인 계층의 문화적 욕구가 통속적 대중문화에 식상한 가운데, 정치문화의 통속에 예술문화가 발양되는 현상으로, 다른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지못하는 진보적 대중이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여 주는 문화공간에 모이는 현상으로 볼 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적 연극운동에 대한 관심 또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민중과 함께 해왔고 민중투쟁의 장에서 발전해왔으며 민중의 과제를 묘사하기 를 업으로 삼아온 민족극 운동은 민중의 이해를 지속적으로 대변해 옴에의해 대중성을 확보해왔다.

그럼으로써 90년대의 반동적 문화현상 속에서도 전히 기층민중과 진보적 지식인 계층속에서 정당성을 확인하고 있으며, 진보적 연극운동을 주도해가고 있다.

그러나 80년, 87년의 이념적 변화를 겪어 오면서도 민족극운동내에는 다양한 경향과 한계가 잔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올바로 극복함에 의해서 90년대의 민족극운동은 진정한 질적 발전을 이룰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글에서는 근래에 공연되었던 민족극 계열의 작품들을 분석, 비교해 보면서 민족극운동의 방향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하며,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논의는 전문연극 집단에 한정함을 알려둔다.

당파적 현실주의 연극의 정의 민족극의 각 작품들을 논의해보기 전에 당파적 현실주의 연극의 일반적 성격을 살펴보다.

당파적 현실주의 연극은 현대사회의 생활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모순과 갈등들을 가장 혁명적이로 민중적인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이를 모순의 해결전망과 결합하여 형상화함으로써 관객에게 현실인식과 가치평가를 가능케하여 현실의 변화에 기여하고자하는 연극이라 할수있다.

구체적인 극적 구조밑 양식화에 대해서는 개별 작품과 관련하여 논할 수 있겠으나, 당파적 현실주의 연극의 제 1의적 규정은 혁명적 세계관과 민중해방의 전망과의 결합이며 둘째로는 생생한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포착하여 극적 갈등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라 볼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속에서 미래를 담지할 전형이 창출되리라 본다.

물론 이 두요소(이념과 방법)가 분리될때 당파적현실주의 연극은 가능하지 않을것이다.

최근 연극작품 통해서본 현실주의 먼저 극단 「현장」의 「어디로 모실까요」를 살펴보자. 이 작품의 배경은 어용노조가 있는 한 택시 운수회사이다.

완전월급제가 도입되지 못하고 인사문제가 노동자들에 대한 회사측의 지배를 확고히 주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깨뜨리려던 한 젊은 노동자가 해고되자 「평범하고 의리있는 노동자」였던 주인공이 해고 취하 서명작업을 벌여 회사측과 대립하고 이런와중에서 아내와도 갈등하나, 제각각이던 동료들과 결국은 하나가 되어 힘차게 투쟁에 나선다는 내용의 연극이다.

한 택시노조와 창작과정에서 직접 결합하여 만들어진 작품으로써 택시기사들도 노동자라는 점과 택시노동자들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대중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창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노동자의 이해에 기반하고자 하는 민족극운동의 단면을 볼수 있으며 그만큼 문제의식의 건강함을 엿볼수 있다.

또한 노동현장과 직접 결합하는 기동력도 볼수있다.

그러나 이 죽품은 기존의 민족극운동이 가졌던 한계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는바, 그것은 첫째, 갈등의 비과학적 해소와 해결전망의 부재이며, 둘째는「전형」을 가장 평균적 인물로만 설정한다는 점, 세째는 민중연극은 촌극적인 것이라는 발상이다.

극단 「현장」의 작품 경향이 그러하듯이(「진짜 노동자」를보라) 이 작품에서도 갈등의 축은 「투쟁-비투쟁」,또는「단결-분열」이다.

그런데, 현상적으로는 「투쟁-비투쟁」이라는 대립으로 나타나는 것도 실제로는 개별 인물들의 사상이나 조건의 차이로부터 발생한다는 점과 그 사상이나 조건을 바꾸지 않는 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 개별 투쟁이 지닌 사회 연관성과, 투쟁이 어떻게 노동해방의 전망과 결합될 것인가의 문제는 간과 되어 있다.

이러한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일면적이고, 다분히 감정적이라고밖에는 이해할수 없는 변화로 극의 갈등을 비현실적으로 해소할뿐만 아니라, 가장 긍정적 인물로 그려진 주인공마저도 단지 「싸우자」는 결의만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려 하고있으며 사실상 독점자본의 힘앞에서 무력할수밖에 없는 이러한 모습이 한계로서가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전형으로 그려지고 축제적인 뒷마무리를 이끔으로써 현실적 무게를 잃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적 한계가 함께 이 작품은 단지 병렬적 사실 전달에 머무르는 구조와 매우 불완전한 연기로 전문창작 집단임을 의심케하는 것이었다.

근래에 공연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아리랑」의「아버지 해방일기」를 보자. 이 극은 해방기의 인민위원회, 미군정기에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월북하여, 다시 60년대에 통일을 위하는 마음으로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장기수로 수형생활을 하고있는 아버지를 만나게 된 딸의 의문으로부터, 이 딸이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도입부와 마무리의 굿의 형식, 객관적 사실에 대한 나래이션, 어린이들의 놀이를 통한 시대항황묘사등을 통하여, 현재적인 갈등보다는 객관적 시대상황의 묘사, 평가 및 회고적 성격을 지닌 긋을 무리없이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성과는 농민 출신의 「아버지」와 당시의 농민들의 자발적 투쟁이 빨치산 투쟁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민중의 자생적 의자가 근저에 깔리면서, 단지 분단의 문제가 아닌 식민지 구조의 철폐와 민중의 이상적 사회의 실현이라는 문제가 피부에 와 닿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보여진다.

같은 소재로 「연우무대」에서 공연한「복숭아 꽃물」과 비교해보면, 「복숭아-」에서의 딸리 아버지로부터 받은 피해에 대한 분노와 소시민적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이것이 이작품의 장점이지만), 이로 인해 내용에서는 개인적 고뇌와 인간적 애정에 머무르는데 반하여, 「아버지의-」에서 딸은 아버지의 행위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해설자, 또는 매개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음으로써 아버지의 시점으로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그리하여,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서사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 극은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며 단지 민중의 염을 되새기는데 머무르고 있다.

또한 전체 구도가 「민중: 일제, 미군정, 반공정권」등으로 명확히 이분화되어 있을 뿐, 개인적으로 구체화된 성격이나 갈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민중들의 모습이 이상화되어 있다.

최근 극단 「한강」에서 만든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 대의 버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적이다.

이 극은 늙은 사진사가 카메라에 잡은 현실의 밝고 어두운 당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연극이다.

그 자체로는 일관된 스토리를 갖지않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개연적인 사건의 다양한 단면들을 효과적으로 포착하여 각각의 장면들이 지닌 사회적의미를 관객에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민족극작품들이 가졌던 도식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성격을 탈피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포착된현실의 변형(데포르마숑)을 통하여 지배계급에 대한 풍자와 민중의 삶의 무게게 대한 공감을 진지하게 해내고 있을 뿐 아니라, 독점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성격화에 성공하고 있으며, 미래 사회를 담지할 전형의 맹아를 구체성 속에서 발견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보다 구체적인미래의 상과 결합되는 현실적 이념으로 구현되는 점에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보여진다.

이는 노동운동의 현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뛰어넘는것만이 당파적 현실주의 연극을 성립시키는 전제가 될것이라 여겨진다.

이상의 논의에서 민족극 운동의 현단계와 그극복의 방향을 작품 성과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민족극 운동은 민중의 사랑을 받는 연극, 혁명적 이념을 다미하고 역사속의 진실을 보여주며 현실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연극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보다 명확한 이념성과 현실결합력, 체계적 훈련만이 이 사회에 당파적 현실주의 연극을 뿌리내리도록 하는 지침이 될수 있을것이다.

이 외에도 조직적 과제와 대중 결합, 대중 창작과의 결합의 문제들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나 이글은 여기에서 마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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