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여가수 이효리의 전원 생활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이 인기리에 종영했다. 그녀가 누리고 있는 편안함과 남편 이상순의 그녀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대중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러한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혹자는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다고도 한다. 티비 속 연출된 이미지가 우리들의 욕망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욕망의 기준은 어떠한 틀로 자리잡아 때로는 개인에게 버거움을 안겨준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에게 티비 속에서 본 연예인의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는 본인과 다른 ‘그들’을 재현해달라는 요구가 몸에 맞지 않고 버겁기만 하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엄마에게 고정된 이미지로서의 ‘모성’을 요구한다. 어떤 엄마에게는 모성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행동하는 게 어렵다. 그런데도 엄마의 개인성은 무시된 채, 고정된 이미지의 모성이 요구된다.

  이처럼 개인의 바람직한 이미지는 하나의 상식과 틀로 고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은 ‘폭력’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허상의 이미지 따위가 인간에 대한 폭력을 행하는 가능성은 차단되어야 한다. 젖을 먹이지 않아도, 자녀의 식사를 챙기지 않아도 엄마는 충분히 좋은 엄마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더불어, 허상의 이미지나 고정관념은 현상에 대한 착오를 불러일으킨다. 그 예로, SNS에서는 ‘상대를 사랑할 때 하는 행동’과 같은 글이 있다. 그러나 상대를 사랑할 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같게 고정되어 있을 수는 없다. 무심한 애인은 내가 SNS에서 본 고정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날 무한히 사랑할 수도 있다.

  즉, 개개인들의 행위는 고정된 이미지의 틀로써 해석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현상들을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하나의 고정된 틀을 통해 평가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는 ‘인지적 경제성’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상대의 특성에 따라서 동일한 행위를 다르게 판단하는 것은 인간에게 다소 힘겨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직업이나 적성과 같은 특성에 따라 개인의 행위는 다르게 판단될 수 있어야 한다. 매번 상대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이러한 사고는 다소 힘겨울 수 있지만, 이는 상대에 대한 폭력의 가능성을 차단해준다. 특정 이미지를 재현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진 상대도 당연히 존중받고 이해받을 수 있어야 한다. 허상의 이미지 따위가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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