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대학(Victoria University of Wellington)

  유독 힘든 학기였다. 여느 학기처럼 시험, 과제 그리고 팀 프로젝트가 주어졌으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았다. 4년을 쉼 없이 달려왔던 것 같다. 매 방학도 방학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더 이곳을 벗어나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학기가 끝나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기대와 도피 그 중간 정도의 마음이었다.

  반 현실도피로 떠난 교환학생이었지만 엄청난 과제에 학기 중에 밤을 여러 번 새야 했다. 교환학생들에게 학점을 따로 준다는 이야기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2천 자 이상 10개가 넘는 페이퍼와 발표까지, 누가 교환학생은 놀러 간다고 했던가? 제출에 의의를 둔다는 여유 있는 말을 하기까지가 어렵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나 스스로 가지고 있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깨는 것이었기에 더욱 밖으로 나가서 부딪혀야 했다. 전 세계공통 매개체는 술이었다. 그리고 조금 취한 상태에서 더 영어가 잘 나온다는 사실. 하지만 처음부터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금 웃긴 계기가 있었다. 같은 기숙사에 사는 첫인상이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냥 무작정 친해지고 싶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자신감이었나 싶지만 절실하면 뭐든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이후 많은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일주일에 5일을 붙어있었고, 같이 여행도 다니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었다.

  어학은 자연스럽게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페이퍼워크, 리딩 그리고 친구들까지.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룸메이트와 마지막 저녁 식사 시간 때였다. 뜬금없이 그 친구가 내 영어가 단기간에 그렇게 빨리 늘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며 말했다. 말 속도가 빠른 캘리포니아 출신 친구 말은 유독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그런 말을 하다니,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머리털이 쭈뼛하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2017년 반절이 지나 말도 안 되게 짧은 한 학기 교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같이 함께했던 교환학생 친구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고, 그곳에서 만났던 키위 친구들과 눈물의 작별을 하고 가장 늦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많이 변한 느낌이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의 능력을 더 넓은 세상에서 펼치겠다는 목표였다. 마지막 학기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눈앞의 미래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지만, 마음속에 굳게 담고 있는 이 목표는 당장 앞에 있는 돌부리는 건널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나서 내가 얻은 소중한 가치였다.

  그곳이 어떤 곳이었든, 어떤 방식을 통해서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수천 번을 해도 모자라다. 나는 계속 내 가능성을 넓히고 싶다. 어쩌면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갈 때도 웰링턴에서의 기억은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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