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트부터 설치 미술까지 실험적 작품 눈길

  조형예술관(조형관) A동 1층 복도를 따라 걷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빔프로젝터로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는 111호에 들어서게 된다. 영상에는 상반신부터 입까지만 모습을 드러낸 여성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사랑해요’부터 ‘내 20대의 한순간을 같이 보내줘서 고마워’, ‘할아버지, 당신이 입학했을 때 사주신 교복 입은 내 모습도 못 보고 돌아가셔서 너무 슬퍼’까지. 영상 속 여인은 덤덤한 목소리로 여러 사연을 읽는다. 이 사연들은 스크린 옆 벽면에 붙은 쪽지에 적힌 내용이다. 스크린 옆 나무 책상 위에 상대방에게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관람객이 적을 수 있는 포스트잇이 놓여있다.

  해당 작품은 이상아(조소·13)씨의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다. 이씨는 “어느 순간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갖가지 이유로 말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전하지 못한 말은 시간이 지나며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프로젝트로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기억을 꺼내, 당시 상대방에게 가졌던 감정을 유도해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창작 동기를 명시했다.

 

▲ 전통 동양화의 청록산수를 재해석해 무료한 세상에서의 이상향을 표현한 ‘천록지’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A동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는 이색적인 산수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반적인 관객들이 떠올리는 산수화가 먹으로 그린 흑백 수묵화라면 권은지(동양화·14)씨의 ‘천록지’는 생생한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으로 가득 차 있다. 선명한 색은 뚜렷한 선과 어우러져 입체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권씨는 “무료하게 다가오는 무채색 세상 속에서 언제나 동화 같은 세상을 상상한다”며 “현실에 결코 존재할 수 없지만 다가가고 싶은 이상향, 무릉도원, 환상에 파묻혀 살고 싶은 나의 푸르른 땅, 그것이 ‘천록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인 동양화의 청록산수를 재해석해 나만의 낙원 천록지를 그렸다”며 “이 동화 같은 환상의 땅을 그린 산수화에서 관람객들도 무료한 일상 속 그들의 환상을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어두운 감정을 홀로 이겨내기 위한 작가의 경험을 그린 ‘진리를 찾아서’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전시는 구석구석 이어진다. 다채로운 캔버스로 가득한 2층 복도를 걷다 보면 맨 끝 208호로 향하는 문이 보인다. 눈에 잘 띄지 않아 자칫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곳이다. 문을 통해 들어가면 수많은 작품이 전시된 하나의 독립된 갤러리와 같은 공간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이 눈에 띈다. 녹아내리는 여인과 여인 머리 위에 놓인 해골, 또 해골 위에 놓인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생각하는 사람’(1880~1888) 형상이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 주변에는 어두운 기운을 표현하는 듯한 검은색 선이 피처럼 흘러내리고, 하늘에서는 천둥번개가 친다. 김지은(동양화·13)씨의 ‘진리를 찾아서’다.

  김씨가 설명하는 ‘진리를 찾아서’는 “어두운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그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진리’라는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누군가 공감해주길 바라면서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을 홀로 겪어내며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찾던 내 경험을 그린 작품”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감정의 혼돈 속에 빠진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된다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 노르웨이 오슬로(Oslo)의 봄을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하고자 한 ‘Sognsveien,235,0863’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208호에서 나와 2층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보통 캔버스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거대한 작품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이한선(동양화·13)씨가 그린 ‘Sognsveien,235,0863’이다. 멀리서 보면 사진이라고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뒤덮인 눈과 초록빛 하나 없는 겨울 숲은 쓸쓸한 정서를 자아내기 충분하지만, 붉은색의 오두막과 밝은 빛깔의 죽순은 묘하게 생명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이씨는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지형과 식생, 기후 등 고위도 지방의 자연이 담긴 공간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동양화를 전공하며 습득한 구도원리와 필법을 이용해 길고 추웠던 겨울을 지나 백야를 준비하는 노르웨이 오슬로(Oslo)의 봄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창작계기를 설명했다.

 

▲ 일상과 비일상이 뒤엉켜 새로운 공간을 나타낸 ‘Metaxu Space / byproducts’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다시 한번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마치 누군가의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하나의 공간이다. 공간에는 TV, 가구, 빨래한 후 널어놓은 옷 등이 각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이 일상적인 공간에 형광색으로 비일상적인 요소가 추가된다. 가구 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홍색 네온사인, 형광 노란색의 티셔츠, 형광의 영상이 흘러나오는 TV가 그 예다. 이처럼 일상과 비일상이 뒤엉킨 공간은 김나라(서양화·13)씨에 의해 조성됐다. ‘Metaxu Space / byproducts’라는 이름의 작품이다.

  김씨는 “이번에 설치한 사이공간에서 내 피부는 옷, 옷은 아버지의 갈등상황으로, 아버지의 옷은 나의 피부이자, 나의 이미지로 축소-확장-재생산의 과정을 거친다”며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새로운 공간을 연출하고 설치된 공간에서 나의 피(被)복이자 피(皮)복을 판매하는 행위를 함께하고자 한다”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또한 “이번 작업에서는 자가 도축이라는 회의감에서 출발한 이미지 연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으로서 내 삶과 이미지 소비에 물음을 던지는 사이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 후회하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쁜 기억을 놓지 못하는 작가의 모습을 담은 ‘배드 타임’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A동에서 B동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면 도자예술과 학생들이 빚어낸 전시가 펼쳐진다. 세밀하게 조각된 작품들 사이로 걷다 보면 붉은 덩어리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새가 보인다. 덩어리 위에는 우물이 설치돼 있고 덩어리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새와 같은 새가 우물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권희원(도예·12)씨의 ‘배드 타임’이라는 작품이다.

  권씨는 새를 둘러싼 붉은 덩어리가 자신의 심장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심장 속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흰 새는 자신이며, 우물을 들여다보는 작은 새 역시 그의 모습이다. 그는 “우물이라는 요소는 윤동주 시인의 자아 성찰을 담은 시 ‘자화상’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외부에서 일어난 일에 후회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지난 나쁜 기억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배드 타임’이라는 제목은 취침 전 침대 위에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bed time’과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점에서 ‘bad time’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고 첨언했다. 

  졸업 전시회를 관람한 김재영(국문·16)씨는 “미술에 문외한인 나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였다”며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배출될 수많은 대단한 작가들의 초기작을 본 것 같아 의미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졸업전시는 26일까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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