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참아온 것들은 누구를 위한 인내였을까

  생각해 보면 불쾌하지 않은 술자리는 몇 없었다.

  원체 술자리의 분위기를 즐기지 않아 자주 참여하는 편도 아니었으나, 손에 꼽는 기억에도 좋은 내용은 없었다. 술에 취한 모습이나 시끄러운 소리 등을 말하는 건 아니다.

  술자리마다 내게 은연중 요구됐던 인내심이 못 견디게 싫었다. 처음 만난 사이에 어깨나 팔, 허벅지 등 신체 부위를 은근슬쩍 만진다거나, 불쾌한 차별적 언사들을 ‘분위기’를 띄운답시고 감수해야 했던 일들이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실수 혹은 장난으로 넘기며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싫은 티 하나 못 냈던 술자리들이 말이다.

이제는 굳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지난주 예상치 못한 일로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업무를 마치고 시간이 비어 친구와 함께 신촌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 들어섰다. 새벽을 훌쩍 넘은 시간이라 가게가 붐비지는 않았으나 위치가 위치인지라 술이 오른 손님들이 속속이 자리하고 있었다.

  술을 마실 생각은 아니어서 음식만 시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안쪽에 앉은 여성분이 잠시 자리를 비우려 할 때 그의 신체를 고의로 만지는 남성 일행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고 동시에 우울했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량을 넘었다는 사람에게 분위기를 몰아 술을 권하고, 지속해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하는 남성을 보며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우울함을 느꼈던 것은 그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나의 인내는 여성을 대상화하며 즐거움을 찾을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핑계 속에서 불쾌할 사람은 누구이고, 그런 농담과 접촉을 시도하며 즐거울 사람은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그들’이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으나 그날 내가 봤던 그도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아서, 그 이후의 관계가 걱정돼서 혹은 괜한 예민함처럼 여겨질까 봐 불쾌함을 참았던 것은 아닐까.

  술자리에서 겪는 이런 일들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슬프다. 내가 무엇보다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것은 살면서 겪어온 불필요한 접촉들이, 성희롱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은 때때로 스스로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지 고민했던 일들이 다른 여성에게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우리가 홍일점, 꽃 그리고 ‘여성’이 아니라 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란다.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쾌한 접촉을 당하는 일이 없길 바라고 우리에게 강요되는 ‘인내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