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EC(Institut des hautes etudes des communications sociales

  누군가 새내기의 내게 대학생활에서 가장 꿈꾸는 게 무엇이냐 물었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교환학생으로 유럽에서 살아보기’. 한국에서 2년간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늘 교환을 염두에 두고 살았다. 모자랄 학점을 미리 채우기 위해 시간표를 채워 들었고, 방학 땐 토플학원을 다녔으며, 늘 열심히 알바를 해 돈을 벌었다. 그렇게 2017년 가을, 벨기에에서 고대하던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다.

  바쁜 삶에서 벗어나 자전거를 타며 여유롭게 시작하는 하루, 설렘이 가득한 일상,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하나 되는 경험. 꿈꾸던 유럽 교환 학생의 모습은 이런 풍경이었다.

  그러나 갓 벨기에에 도착하곤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브뤼셀은 서울만큼이나 바쁜 도시였고, 등교길에 마주하는 건 돈을 구걸하는 노숙자였으며, 사람들의 눈빛에는 호기심 어린 다정함보단 이방인에 대한 경계와 조롱이 담겨 있었다. 같이 온 친구는 집 계약에서 문제가 생겨 거주지마저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고, 임시로 내 집에서 머물며 밤마다 눈물을 훔치기 일쑤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바뀐 환경에 덩그러니 놓인 나는, 그야말로 이방인이었다. 로망은 접어두고 현실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 여행과 같은 일상을 꿈꿨지만 ‘여행’과 ‘거주’는 삶의 결이 너무도 달랐다. 완전한 불어 문장 한 마디 뱉을 줄 모르는 내게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물건을 사는 일부터, 번호를 개통하고, 학교 관계자를 만나는 일까지. 한꺼번에 이토록 많은 외부의 변화로부터 자극 받은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며 변화를 온몸으로 마주했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다 보니 비로소 조금씩 안정이 찾아왔다. 그제야 숨을 고르며 ‘생존’이 아닌 ‘생활’을 위한 고민을 하게 됐다. 어떤 수업을 선택해야 할까, 외국인 친구들과는 어떻게 더 친해질 수 있을까, 다음 주말에 어디로 여행을 갈까와 같은. 외국인 친구들과 ‘너 어디서 왔어’, ‘뭘 좋아해’ 같은 차원, 그 이상의 대화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곤 하나, 문화와 정서에서 비롯된 ‘다름’에 충격을 받은 적도 많았다. 다름을 인정하고 벽을 허무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동시에 즐겁기도 했다. 홈 파티를 열어 불고기와 파전을 요리해 대접하기도 했고, 각자 나라의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기도 했다. 각 나라의 대학교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는가 하면, 다 같이 팝송을 부르고 춤추며 놀기도 했다. 교환학생이 아니면 쉽게 경험하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또한 여행책에서나 보던 나라를 주말 동안 짧겐 2시간, 길겐 6시간 버스를 타고 맘껏 누비는 것은 유럽 교환 생활의 큰 즐거움이다.

  교환 생활의 절반이 지났다. 여전히 타인의 불쾌한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고, 공부는 쉽지 않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많다. 모든 게 쉽지도, 아름답기만 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분명히 벨기에에서의 5개월을 그리워할 것이다. 나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던 안전한 세계에서 나와, 스스로 알을 깨어나가는 과정만으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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