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비어있는 주체’ 설정이 독자적 작품 만들어”
“소설 속 ‘비어있는 주체’ 설정이 독자적 작품 만들어”
  • 전혜진 기자
  • 승인 2017.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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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편집자 박혜진 동문 인터뷰
▲ 박혜진 편집자. 제공=본인

오랜만의 모교 방문일 것 같다.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사실 오랜만에 오는 건 아니다. 졸업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대학 친구들 만나거나, 꼭 그럴 때가 아니어도 종종 학교에 온다. 학교 다닐 때도 교정을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여전해서 좋다.

  재학 시절엔 이대학보사 기자로 활동했기 때문에 항상 바빴다. 시간에 쫓기고 마감에 쫓겼다. 그래도 기자 동기, 선후배들과 같이 지내면서 지금의 성격을 만든 것 같다. 사회 생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인간관계라고 생각하는데, 성격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는 그때 가장 많이 배웠다. 

 

-어떤 계기로 문학 편집자가 됐나. 또 편집자로 일하면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은 무엇인가

  독서를 좋아하는데 그 욕망을 누르고 취업 준비를 하는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자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출판 편집자였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작가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다. 보통 1년에 10권 정도의 책을 만드는데, 작가들과 함께 책을 만드는 일은 매번 새로워 지치지 않는 노동이다. 힘든 일이 있다면, 개성이 지나치게 강한 작가들에게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끝내 적응이 안 되는 경우다.

 

문학 평론가도 겸업하고 있다. 평론가로 활동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나

  책을 만들다 보니 그 책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좀 더 본격적인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행위가 간접적이고 은근해서 좋다면 글을 쓰는 행위는 보다 직접적이어서 좋다. 서로 다른 성격의 행위를 병행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만족스럽다.

 

-편집자로서 「82년생 김지영」 결말 부분에 영향을 줬다고 들었는데, 어떤 영향을 줬나

  의사의 이야기가 조금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방향만 제시했을 뿐인데 의사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됐더라. 전문직 여성이 수학 문제를 풀면서 느끼는 답답함, 그리고 의사의 현실 인식이 문제의 현재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독자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을 던지는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편집자가 아닌 문학 평론가의 입장에서 「82년생 김지영」 을 평가한다면 어떻게 평가하나

  「82년생 김지영」 은 한국 사회와 문학에 기록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기형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김지영의 목소리가 현실의 목소리를 끌어내 소설 안팎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지영은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비어 있는 얼굴, 비어 있는 목소리다. 즉 아무도 아니지만 모두가 될 수 있는 ‘비어 있는 주체’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자리를 선점할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