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는 대부분의 이화인이 어렸을 때만 해도 ‘비혼’은 죄악이었다. 사실 비혼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비혼 대신 ‘노처녀’라는 단어가 공공연히 쓰이던 시절, 결혼을 하지 않겠다면 돌아오던 답변은 “꼭 이런 애들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는 낭설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는 비웃음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은 5.5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통계가 증명하듯 더이상 비혼은 죄악도, 비웃음의 대상도 아닌 그저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왜 사람들이 비혼을 택했는지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또, 이들의 선택이 뜨거운 논란이 되는 현실 뒤엔 어떠한 불편한 진실이 자리잡고 있는지 취재했다.

 

삶의 선택지에 ‘비혼’이 들어온 이유

 “부모님의 실패한 결혼, 답습하고 싶지 않다”

  사회과학대학에 다니는 ㄱ씨는 어머니의 결혼이 실패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ㄱ씨의 어머니는 스무 살에 본인보다 다섯 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약 30년을 살았다. 남편의 일방적 폭행과 외도로 얼룩진 세월이었다. ㄱ씨는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이 우리 엄마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나 또한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런데 그건 또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내 친구의 이야기이자 뉴스에 나오는 사람의 경험이기도 했다”며 “육체적, 정서적 폭력으로 가득한 엄마의 결혼생활을 답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보며 결혼의 동의어는 ‘남성의 편리함이자 여성의 희생’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화인도 있었다. 김진경(특교·15)씨는 어머니의 결혼생활을 보며 비혼에 대해 생각했다. 김씨는 “근래 약 4년 동안 엄마 혼자서 돈을 벌고 있다”며 “그럼에도 엄마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밥을 차리고, 우리들 등교 준비를 도와주고 나서야 출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혼은 함께 했는데 어머니는 일, 육아, 시부모 모시기 등을 해야 하는 반면 아버지는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아빠가 누리는 것들은 모두 엄마의 희생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나의 성향이 결혼과 맞지 않을 뿐”

  한편 주변의 영향보다는 자신의 성향과 결혼이 맞지 않아 비혼을 택한 경우도 존재한다.

  부당한 전통에 저항하는 개인적 성향 때문에 현 결혼 체제에 순응할 수 없다는 이화인이 있었다. 강서윤(사과·16)씨는 “페미니즘을 알게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오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게 됐다”며 “허례허식 같은 결혼식부터 시댁과의 관계까지 여성에게 형성된 불합리한 관습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비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김지원(특교·15)씨 역시 자신의 성격이 결혼 제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주변 자극에 예민한 성격이라 연애를 할 때도 타인이 내 삶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며 “연애만 해도 이 정도인데 결혼을 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두렵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결혼을 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시댁 문제, 임신, 출산, 양육 등의 활동이 제겐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혼자 살아보니 나쁘지 않더라”

  오랫동안 혼자 살다보니 자연스레 비혼의 길을 걷게 된 경우도 존재한다. 서종연(중문·97년졸)씨는 약 20년간 혼자 살고 있다. 학창 시절의 그는 미팅, 소개팅을 통해 연애하는 것을 즐겼으며 결혼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서씨는 “해외에서 취업을 하게 된 26살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간 독립해서 혼자 살아보니 내가 얼마나 혼자 잘 사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만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데 굳이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며 비혼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동거를 경험해본 후 혼자 사는 것의 편리함을 깨달을 수도 있다. 유지현(경기도 화성시·여·27)씨는 혼자 자취할 때가 전 남자친구와 동거를 할 때보다 행복해서 비혼을 결심하게 됐다. 민씨는 “남자친구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동거를 했는데 사랑하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집안일을 잘 하지 않는 것, 반찬 투정하는 것 등 연애 때는 몰랐던 남자친구의 부정적인 모습을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거를 끝내고 혼자 자취 하는 지금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뜨거운 비혼 논쟁 뒤의 불편한 진실

한국 사회가 염려하는 것은 비혼 아닌 ‘비’출산

  빅데이터를 이용해 통계를 내는 스마트인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비혼의 온라인 버즈량(언급 횟수)은 매년 급증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의 비혼 언급 횟수는 재작년 상반기 대비 약 20배 증가했다. 김주희 교수(여성학과)에 따르면 이 수치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reboot)’라고 불리는 2015년을 기점으로 비혼이라는 단어가 공적으로 쓰일 만큼 확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페미니스트들이 증가하며 여성들은 기존 가부장제의 불합리함을 깨달았다”며 “소위 정상 가족이라고 불리던 것이 사실은 여성의 희생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된 여성들이 결혼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비혼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만만찮다. 이에 김주희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저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며 “여성이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을 출산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수용해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돌린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페미니스트가 된 여성들과 저출산 공포를 맞닥뜨린 사회가 격돌하며 비혼주의 논쟁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비혼은 선택일 뿐 논쟁거리 아냐

  한편 「연애하지 않을 자유」, 「미운 청년 새끼」 등을 저술하고 잡지 <홀로> 편집장을 역임 중인 이진송 동문(현대소설 전공 박사과정)은 비혼주의 논쟁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결혼을 하는 사람에게는 “왜 결혼하고 싶냐”고 묻지 않으면서 비혼을 택한 사람들에게만 적합한 이유와 타당성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왜’ 결혼을 하지 않겠냐고 물을 수 있는 것, 결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적합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전제로 하는 권력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삶의 통과의례로 설정해뒀기 때문에 비혼이 ‘예외의 삶’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비혼이 건강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이 ‘예외의 삶’ 즉 규범 바깥의 삶에 대해 타자화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비혼을 선택했는데 어느날 결혼을 하고 싶어진다 해도 스스로 탓할 것 없다”며 “비혼은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택일 뿐”이라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지지 말고 자신이 가장 편한 상태를 존중하고 즐기면 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