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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이 닿아 사라진 것들을 추억하다
김라연 작가 개인전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
2017년 11월 13일 (월) 유현빈 기자 heybini@ewhain.net

 

 

 
 
  ▲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Ⅱ(2013) 사진=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도시에서는 수많은 것이 복잡하게 뒤엉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이곳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이가 있다. 더는 만날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는 작가 김라연(서양화 전공 박사과정) 동문이다.

  사라진 것들과 그들의 이름에 김 작가가 부여한 특별한 의미를 엿보기 위해 7일 서울시 서초구 스페이스 엠(Space M) 갤러리에서 개최된 그의 개인전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를 찾았다.

  영상 하나와 그림 아홉 점이 전시된 이번 개인전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한 공사장의 풍경을 담았다. 높다란 공사장의 펜스로 둘러싸인 흙무더기와 구조물, 주름 잡힌 방수천 등의 익숙한 대상들이 흙바닥 위에 자리잡았다. 김 작가는 그 풍경 위로 사람의 손길이 닿으며 사라진 식물들의 흔적을 그려냈다.

  김 작가는 20년간 한 동네에서 살며 동네가 재개발되는 과정을 지켜봐왔다. 그는 획일화된 도시인들의 삶 속에서 간과되는 지난날을 조명했다. 그 과정에서 현대인들이 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미명 하에 놓치고 있는 추억과 같은 삶의 가치를 회복하길 바랐다.

 

   
 
  ▲ 파라다이스의 거리(2016) 사진=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그림이 ‘부재하는 것을 쫓아가는 행위’라고 김 작가는 믿는다. 그림은 이미 없어져 버린 무언가를 쫓아가는 마음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사라진 대상들을 찾아내고 알아내려 한 이유다.

  그는 미국 고고학자 사라 파캑(Sarah Parcak)의 ‘고고학자들은 과거의 수수께끼들을 풀어간다’는 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김 작가 또한 그의 그림 속 시간의 흔적들에서 의미를 가지지 못한 채 사라진 식물들을 궁금해했고 그들의 이름과 가치를 풀어내길 원했다.

  이번 전시에서 김 작가가 가장 주력한 작품인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2017)에는 그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담았다. 그는 이 그림에 여러 표식들을 배치했다. 그가 관찰했던 공사장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몇 년 사이 자랐던 사초, 망초, 개오동나무와 같은 식물들의 라틴어 학명을 표식으로 썼다.

  사학자들이 유물을 발굴하기 전 일정한 깊이로 그 주변을 모두 파내는 것을 본 그는 캔버스에 여러 흙구덩이를 그리고 그 옆에 학명들을 배치했다. ‘이 식물들은 아마 이곳에 있지 않았을까? 이 곳을 파보면 이 식물의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구성이다. 이름표와 구덩이가 없는 그 밖의 배경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흙더미로 표현됐다. 과거의 흔적에 대한 관객들의 상상이 오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 이유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통성명을 하고 상대방을 알아가기 마련이다. 그는 이와 마찬가지로 식물들의 모습에서 나아가 이름을 아는 것으로 시작해 보다 깊은 부분을 알길 원했다. 국립생태원의 도움을 받아 도시에서 이미 사라진 흔적들의 이름을 묻고 그것을 불러주며 의미를 되새겼다.

  ‘파라다이스의 거리’(2016)에는 사라진 것을 밟고 생겨난 현대식 건물들을 보며 김 작가가 품은 도시와 파라다이스의 관계에 대한 모순과 의문을 풀어냈다. 도시의 기표와 간판언어들을 사용한 이 작품의 제목은 공간상에서의 거리와 길가로서의 거리의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캔버스에는 흙으로 덮인 공사장 위로 철조망과 바리케이트, 시멘트 더미가 군데군데 그려져 있다. 조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재료를 무자비로 배치한 것이다. 중앙에는 ‘파라다이스’라는 간판이 있고 주위에는 ‘파라독스(paradox)’라는 표지가 늘어져 있다.

  본래 공터였던 곳에 아파트나 호텔이 지어졌고, 그 곳에 자리했던 여러 생명들이 설 곳을 잃었다. 동시에 그 건물들의 이름은 ‘파라다이스’와 같은 유토피아적 환상을 향하고 있었다. 김 작가는 생명이 없는 황량한 땅에 그것과 대조되는 슬로건을 지향하고 있는 건물들의 이름에 모순을 느껴 ‘파라독스’라는 단어를 활용했다.

 

   
 
  ▲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다(2017) 사진=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이번 전시회가 열린 스페이스 엠 역시 작가의 의도가 담긴 장소다. 10년간 약 1.5톤의 쓰레기가 쌓인 채 방치돼 있던 지하주차장을 작년 한 사운드작가가 전시공간으로 개조한 공간이 스페이스 엠이다. 김 작가는 “과거엔 없었던 공간에 나름의 의미를 둠으로써 새로운 용도를 가지게 된 이 갤러리가 제 작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가진 계기에 대해 김 작가는 과거를 생각하는 관점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현재와 과거는 동시에 존재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과거를 평소에 인식하지 않는 것뿐이지 현재의 ‘뒷방’과도 같다는 것이다. 3차원적 공간에서는 현재의 위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뒷방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공간적으로 생각하면 과거와 현재는 동시에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의 동시성을 인식하면 현재에 급급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여유가 생긴다”고 김 작가는 말했다. 그는 이어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이나 없어지는 것들을 회상하는 기회도 가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관람객들이 길거리의 공사장을 보며 새로운 의미를 떠올리길 바란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벗어나 그 땅에서 건물이 아닌 어떤 것이 생겨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는 것이다. 김 작가가 관람객들이 해봤으면 하는 상상이다. 그는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에 모두 의미를 두고 살아간다면 오늘 내가 선 이 공간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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