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로서 산다는 것은 불편함을 딛고 더 좋은 것을 향하는 것

  페미니스트로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이전과 다르다. 말 한 마디를 허투루 넘길 수 없고 사소했던 일들에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이 일은 나에게만 이렇게 불편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인 저 한 마디가 거슬리는 것은 나뿐일까? 「괜찮지 않습니다」는 대중문화와 일상에서 생기는 흔하고 평범한, 그래서 더욱 ‘괜찮지 않은 일’들을 다루고 있다. 혼자만의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이 사실 ‘우리의 고민이었음을 알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는 작가 최지은(국제사무・04년졸) 동문을 2일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 지난 9월 페미니즘 서적 「괜찮지 않습니다」를 출간한 최지은 작가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괜찮지 않습니다」

  ‘그동안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괜찮지 않아졌다’는 의미에서 지은 책의 제목이다. 대중문화를 다루는 웹 매거진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일했던 그가 바라본 ‘괜찮지 않은 일’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대중문화를 다루며 느꼈던 가장 큰 문제는 ‘몇 년 사이 여성이 연예계 시장의 주류에서 밀려난 것’이었다. 최근 2~3년간 남성들만 출연하는 예능, 소위 ‘아재 예능’이 인기를 끌며 무엇이든지 ‘남성들만 하는’ 프로그램이 꾸려졌다.

  상업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연기자 전원이 남성이거나 소수의 여성이 참여하긴 했지만 그들의 역할은 한정돼 있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맡을 수 있는 남성과는 대조적으로 여성은 항상 ‘어리고 섹시한 홍일점 막내’로서만 기능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이미 예능을 포함한 연예계에 진입하기 힘들어졌어요. 한번 진입이 어려워지면 이미 형성된 구조는 점점 탄탄해지고요. 어쩌다 적은 수의 여성이 그 세계에 진입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여성에게 허용하는 폭은 남성에게 묵인해주는 폭과 굉장히 다르죠. 여성 배제와 여성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지금 한국 대중문화에 분명히 존재하고 그런 요소들이 계속해서 여성혐오를 형성하고 있죠.”

  그가 일했던 시간 속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대중문화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룬 지 8년이 되던 해인 2015년, ◆옹달샘(유상무·유세윤·장동민) 팟캐스트 사태와 트위터의 ‘나는 페미니스트다’ 해쉬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최 작가는 옹달샘 구성원들이 ‘각자의 길을 구축해나가는 오래된 친구들’이라는 점에 재미를 느껴 세 남자의 서사를 다루는 기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는 이 사태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 공인인 그들이 심각한 수위의 여성 비하 발언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그들의 언행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흥미롭게 여겼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기자로서 일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다른 문제더라고요. 옹달샘 기획을 기사화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린 저는 한국 대중문화의 여성혐오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기사를 기획하게 됐어요.”

  기사의 주제는 여성혐오가 우리가 아무 일 없이 넘어갔던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 스며있다는 것이었다. 대중문화 내 여성혐오적 요소가 매우 흔하며 이는 여성의 이미지를 평면적으로 굳혀 어린 세대에 확산하고 있다는 예시들을 담았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적 차원을 넘어 페미니스트 기자로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페미니스트로서 더욱 실천하며 살아야 했던 것은 아닌지, 나는 그동안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비판을 해오고 있었는지 고민해보게 됐어요.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혐오 요소들을 칭찬하고 동조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거죠.”

  「괜찮지 않습니다」에는 육아와 갱년기, 폐경 등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는 책속에 실린 ‘엄마의 모든 시간, 양육이라는 노동’이라는 글을 쓰며 조사했던 실제 한국 여성의 육아 현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가 취재를 위해 주부들에게 ‘한국에서 엄마로서 사는 것’에 관해 묻자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는 것이다.

  “그때 남들이 묻지 않았을 뿐이지, 이들은 이 얘기를 너무나 하고 싶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가까이 있었던 저 자신조차도 어마어마한 양의 노동에 대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슷한 삶을 살아왔어도 어떤 지점부터는 차이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에 관한 서로의 이해가 부족했고 이를 알고자 노력한 적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 반성도 했죠.”

  폐경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여성이 겪는 일이지만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아직도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는 자궁내막증 치료 중 느꼈던 갱년기 증상을 견디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됐다.

  갱년기 증상을 여성용 약품 광고에서만 접했던 그는 ‘조금 더워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증상은 만성질환과도 같았다. 매일 온몸이 아프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주변에서는 우울증이 생기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최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직접 겪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10년 전쯤 갱년기라는 말씀을 하셨었어요. 하지만 제가 겪어본 일이 아니니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쳤죠. 그런데 고통을 직접 경험하고 난 후에야 엄마의 힘든 시간을 하나도 나누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미리 증상을 알았더라면 엄마를 다르게 대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제가 받았던 성교육을 탓하기도 했고요.”

  최 작가는 나이든 주부가 재생산을 할 수 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발언권이 약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상이 경험하지 않는 고통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은 채 폐경기의 갱년기 증상을 히스테리에 비유하며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최 작가는 얼마 전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퇴사했다.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한 지 약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진 휴식기다.

  “페미니즘을 알고 나면 순간의 행동이 내가 믿는 가치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돼요. ‘돈이 되는 일이지만 가치관에 맞지 않으니 포기할 것인가’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 상황에서 개인이 되고 싶었어요.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이나 자유롭게 비판하고 싶은 문제에서 개인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두고 싶었거든요.”

  그는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이 재밌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거의 모든 것을 쉽게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지만, 생각을 한번 더 하는 것이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더 좋은 것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재밌어요. 예를 들면 교과서가 부여해왔던 남성 작가들의 권위에서 벗어나 내가 몰랐던 여성 작가들의 책을 읽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은 무엇인가 고민해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여성들이 더 나은 것을 향해간다는 것’만으로도 분개하는 여성혐오자를 보는 것이 오히려 재밌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해요.”

  사실 최 작가는 「괜찮지 않습니다」를 쓰며 망설일 때도 있었다. ‘남들이 다 아는 얘기인 것 같은데 책으로 펴내도 괜찮을까’하는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책을 꼭 써야만 했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수많은 콘텐츠를 보며 ‘이건 좀 아닌데’ 하고 느꼈을 때가 꽤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이거 어떤 것 같아? 좀 이상하지 않아?’ 하고 묻고 싶었고 종종 주변인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불편함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저처럼 혼자 고민했던 페미니스트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고민이 어딘가에서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의 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길 바라요.”

◆옹달샘 팟캐스트 사태= 2013년~2015년 개그맨 유상무, 유세윤, 장동민이 진행한 팟캐스트 방송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 일부 회차의 여성혐오 발언에 관련된 논란

 

<책 소개>

괜찮지 않습니다

최지은 기자의 ‘페미니스트로 다시 만난 세계’

  사회 곳곳에 만연한 여성 혐오에 불편함을 느끼는 당신에게 보내는 공감의 메시지!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고민하며 다시 만나게 된 세계를 오롯이 담은 「괜찮지 않습니다」. ‘매거진 T’, ‘텐아시아’, ‘아이즈’를 거치며 10여 년간 대중문화 기자로 일해 온 최지은 기자의 첫 책이다. 대중문화 곳곳에서, 무의식에 발현되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여성 혐오를 말하는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일상이 어느 순간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도 불편하다”고 대답해준다.

  책은 모두 4부로 나누어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학생 시절부터 갱년기를 맞이하기까지 일평생에 걸쳐 혐오에 시달리며,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과 같은 여성 선별 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한국 여성의 일상에 대해, 2부에서는 웃으며 볼 수 없는 한국 예능과 로맨스로 포장된 드라마의 폭력적 클리셰, 존중받지 못하는 걸 그룹과 여자 연예인에 대해 다룬다.?3부에서는 유독 남성에게만 관대한 대중문화 풍토와 사회적 규범과 책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세대의 욕망을 담았다. 더불어 여자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의 세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여성들의 움직임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에서 찾은 재미들을 공유하면서 여성 혐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함께 싸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