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 청량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이 이뤄낸 가을 날씨는 우리를 일상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가을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하루쯤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18일 철도의 날을 맞아 도심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서울 내 폐철로 세 곳을 소개한다.

 

산책과 독서가 어우러지는 철길-경의선 숲길

 

▲ 어른이 될 때까지 읽어야 할 100선 도서 전시 구조물인 ‘와우교 100선’ 이명진 기자 myungjinlee@ewhain.net

  서울시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좁게 흐르는 시냇물과 연둣빛으로 물든 공원이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거나 돗자리를 펴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뒤로 작은 철길, ‘경의선 숲길’이 보인다.

  경의선 숲길은 용산구 문화체육센터부터 홍제천까지 6개 구간을 이은 약 6.3km의 길로, 경의선과 공항철도가 지하에 건설되며 상부에 조성된 공원이다. 그중 연남동 구간은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거리다.

  일주일에 2~3번 손자와 함께 경의선 숲길을 찾아오는 박점희(67・여・서울 마포구)씨는 “과거 철길이 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돼 아이들이 놀기에 안전하다”며 “젊은 사람들도 많아 덩달아 젊어지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 세대를 아우르는 휴식 공간이 된 경의선 숲길 이명진 기자 myungjinlee@ewhain.net

  홍대입구역 6번 출구로 발걸음을 옮기면 ‘경의선 책거리’에 대한 설명이 써진 돌 위에 책 읽는 여자와 기타 치는 남자 동상이 눈길을 끈다. 경의선 책거리는 작년 10월 마포구가 출판 산업의 발전을 바라며 경의선 홍대복합역사에 조성한 테마 거리다.

책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간판만 다르고 모양이 똑같은 건물이 곳곳에 있다. 이 건물은 각 테마에 맞는 서적이 구비돼있는 책방이다. 여행 관련 서적을 모아놓은 ‘여행산책’,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 있는 ‘아동산책’ 등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10개 주제로 이뤄져 있다. 시민들은 책방에 들어가 자유롭게 책을 읽고 전시된 책을 구매할 수 있다.  

 

▲ 책방 ‘문학산책’에서 독서하는 시민 이명진 기자 myungjinlee@ewhain.net

  책방을 지나면 간이역처럼 꾸며진 ‘책거리역’이 나온다. 책거리역은 과거 경의선의 세교리역과 서강역 사이 와우교 하부를 개축해 시민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외무교 100선’의 앞 계단 위에 앉아 책을 읽으며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부터 벤치에 앉아 홀로 독서하는 사람까지, 책거리역에는 다양하게 자신만의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책거리역을 찾은 홍익대 김주혜(패디・16)씨는 “책들이 테마별로 나뉘어 있어서 한 분야에 관한 책들을 모아 보고 싶을 때 자주 방문한다”며 “구매 후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경의선 책거리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황금빛 들꽃이 반겨주는 가을 철길-경춘선 숲길

▲ 공원으로 조성된 경춘선숲길을 따라 걷는 시민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서울시 노원구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인근에는 도심 속 폐철길을 산책로 겸 공원으로 조성한 경춘선 숲길이 있다. 경춘선 숲길은 2010년 열차운행이 중단된 철길을 산책로로 재구성한 곳이다. 가을볕이 내리쬐는 이곳에는 코스모스와 강아지풀을 비롯한 여러 들꽃이 만발해있다.

  경춘선(옛 성동역~춘천역)은 1939년 우리 민족자본으로 개설된 첫 철도다. 일제 강점기 강원도청을 춘천에서 철도가 놓인 철원으로 옮기려 하자 춘천 유지들이 힘을 모아 경춘선 철도를 개설했다. 그 후 약 71년간 여객과 화물열차가 활발히 오고 갔지만 서울시가 2010년 12월 춘선 복선전철화사업을 추진하면서 광운대역(옛 성북역)에서 경기도 구리시 갈매역까지 약 8.5km 구간은 철도폐선부지가 됐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쓰레기가 쌓이고 불법 주차장으로 사용됐었다. 그러던 중 2013년 서울시 도시재생프로젝트로 광운대역~서울시 경계 구간 6.3km가 공원화됐다. 옛 철길의 멋을 살려 조성한 덕분에 경춘선 숲길은 지역 주민의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일주일에 3~4번 경춘선 숲길을 찾는다는 김지연(31・여・서울 노원구)씨는 “아이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경춘선 숲길을 산책하곤 한다”며 “주민들의 휴식처가 돼 좋다”고 말했다. 

경춘선 숲길의 철길 구간을 지나면 철길 레일 사이를 보도블록으로 메꿔 걷기 쉽도록 가꾼 산책로도 나온다. 곳곳에 앉아 쉴 수 있는 벤치와 색색의 벽화를 지나고 나면 ‘도깨비 시장’이나 ‘카페 거리’같은 먹거리를 파는 곳도 있다.

  옛 정취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경춘선 숲길은 한적하면서도 활력이 있는 곳이다. 경희대 김태경(지리·17)씨는 “경춘선 숲길을 거의 매일 찾는다”며 “울산에서 올라와 서울에 사는 중인데, 이곳은 도심 속 산책로가 예쁘게 조성돼 있어 기분 전환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숲길을 산책 중이던 서울여대 손하은(문정·16)씨는 “아버지가 학생 때 이 경춘선을 타고 학교에 다니셨다고 들었다”며 “폐철길을 새롭게 바꾼 게 좋은 시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심 속 자연냄새 가득한 철길-항동철길

 

▲ 항동철길역 표지판 모형 이명진 기자 myungjinlee@ewhain.net

  서울시 구로구 지하철 7호선 천왕역 3번 출구에서 북적북적한 아파트 단지를 지나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면, 도심 속에서 쉽게 보기 힘든 기차 표시등이 우뚝 서 있다. 기차 표시등을 따라 들어가면 울창한 수풀 사이 기다란 철길이 펼쳐진다.

  항동철길은 서울시 오류동에서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까지 이어지는 4.5km 길이의 단선 철도다. 과거에는 화물을 운송하는 기차가 정기적으로 다녔으나 지금은 군용 물자를 나르는 야간열차가 비정기적으로 다닌다. 그러나 이제는 열차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지나는 철길이 됐다. 철길을 따라 몇 걸음 걷다 보면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가 점차 사라지고 산들바람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남는다.

  이곳엔 철길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자연을 사진으로 담기 위한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항동철길로 출사를 온 아주대 유제희(사회・15)씨는 “자연 속 정적인 분위기를 찍고 싶어 방문했다”며 “폐철길이라 사진에 옛 정취까지 담겨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 항동철길 철로 위를 걷는 가족 이명진 기자 myungjinlee@ewhain.net

  초가을을 맞이하는 듯 항동철길의 갈대들은 갈색빛으로 물들고 있다. 곱게 물든 갈대와 분홍빛 코스모스 사이를 지나 철길 중앙에 다다르면 ‘푸른수목원’이라고 쓰인 간판 하나가 보인다. 이 수목원이 바로 사람들의 발길을 항동철길로 이끄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2013년 여름 완성된 서울 최초 시립수목원인 항동 푸른수목원은 약 2100종의 다양한 식물과 25개 테마 정원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항동저수지와 갈대숲이 어우러진 공간은 쌀쌀하지만 곱게 무르익어가는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긴다.

  수목원에는 단순히 식물뿐만 아니라 식물과 관련된 여러 프로그램이 준비돼있다. 시민들은 가든디자인, 식물환경관리, 식물공예 등 6가지 주제로 정원 가꾸기를 배울 수 있는 ‘가드닝 스쿨’ 프로그램과 11주 과정의 ‘도시정원사 양성과정’을 수강할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 철길과 수목원에 자주 오는 김미정(31・여・서울 구로구)씨는 “답답한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 맑은 공기를 쐴 수 있어 좋은 곳”이라며 “특히 수목원, 철길 모두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생태교육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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