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의 영수증’ 급부상에 소비문화 변화 감지 “단순한 유행의 순환일 수도”

▲ KBS 2TV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과소비를 한 시청자에게 “스튜핏!”을 외치는 김생민씨. 출처=KBS 2TV

  “스튜핏(stupid)!”

  최근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 유행어로 급부상한 대사다. 해당 팟캐스트에서는 개그맨 김생민씨가 등장해 청취자의 영수증을 분석, 평가하며 과소비에 대해 거침없이 “스튜핏!”이라고 외친다. ‘연예계 대표 알뜰남’으로 불리는 김생민씨가 소비를 줄이고 저축 및 적금으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컨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온 욜로 열풍과는 상반되는 현상이다. 미국 가수 드레이크(Drake)의 ‘The motto’(2011) 가사에서 시작된 욜로 열풍은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in 아프리카’를 통해 한국에도 자리 잡았다. ‘당신의 인생은 한 번 뿐’이기에 용기 있는 선택을 하라는 뜻이었던 욜로는, 점차 미디어에 의해 과도한 소비문화를 합리화하는 의미로 변질됐다. 이렇게 수년간 지속돼온 욜로 열풍 속 ‘김생민의 영수증’은 조금씩 소비문화의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화에 등장한 절약 문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소비 패턴을 바꾸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대학가에서 두드러지며, 본교생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적금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저축에 나선 학생도 있다. 이소원(국문·17)씨는 최근 매달 15만원씩 저축하는 적금에 가입했다. 그는 “적은 돈을 모으는 것이라 큰 동기부여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며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적게라도 돈을 모아본 경험이 있다면 더 큰 돈도 모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얼마가 됐든 돈을 차근히, 오래 모아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세진(사교·15)씨는 지금까지 써본 적 없던 가계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장씨는 “지금까지 현재의 쾌락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학교를 오가며 거리에서 저렴한 옷, 화장품 등을 쉽게 구입하곤 했다”며 “가계부 작성은 ‘김생민의 영수증’을 들은 후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기 위해 내가 찾은 해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적금이나 가계부 작성처럼 적극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소비 습관을 반성하는 기회가 됐다는 본교생도 있었다. 김주은(인문·17)씨는 “용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아무 생각 없이 식후 5000원대 커피를 마셔왔다”며 “김생민씨가 식후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이거는 습관이에요. 습관은 10년 이상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후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욜로’세대에게 ‘김생민의 영수증’이 통한 이유

  최근 대학생들은 스스로 욜로세대이자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고 자조한다. 자신을 욜로세대라고 규정한 김지연(정외·16)씨는 “사실 욜로세대가 삼포세대와 일치하지 않냐”며 “3만원짜리 립스틱을 통해 얻는 순간적 행복을 10년을 저축해도 모을 수 있을지 불분명한 집값, 자동차 값, 결혼 자금과 교환해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생민의 영수증’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현재의 작은 쾌락을 교환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며 “일종의 희망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천혜정 교수(소비자학과)는 이러한 절약문화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부정적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천 교수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도래하자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져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성취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며 “어떻게든 생존해야한다는 생각이 제한된 자원이라도 아끼고 절약하자는 현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천 교수는 대중이 김생민씨 이미지에 자신을 투영한 것을 유행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그는 “김생민씨가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이 아님에도 알뜰하게 저축해 10억을 모았다는 에피소드부터 시청자가 자신이 쓴 영수증에 대해 재미있으면서 공감할 수 있게 피드백을 받는다는 신선한 방송 포맷 등이 겹치며 인기를 끌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세완 교수(경제학과) 또한 ‘김생민의 영수증’의 흥행 이유로 불경기의 산물을 말했다. 그는 “2008년 이래로 불경기가 지속됐고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려워졌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합리적인 트렌드가 부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평소 남들과 공유하기 힘든 개인 소비내역이 팟캐스트를 통해 공유되며 트렌드로 부상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절약이 일깨운 주체적인 소비문화

  절약문화에 대해 ‘바람직한 트렌드’라고 평가한 차은영 교수(경제학과)는 욜로만을 추구하기에는 현대인의 기대수명이 길다고 지적한다. 인생을 장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심 및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차 교수는 “인터넷이 발달해서 모든 계층이 최상 계층의 소비에 노출돼 지나친 소비로 내몰리는 상황”이라며 “각자 여건에 맞게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저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점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상 계층의 소비 생활은 미디어를 통해 일반 대중에 노출되며 마치 그것이 기준인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의 MC 김구라씨가 게스트로 등장한 김생민씨의 소비습관을 조롱했다며 논란이 된 것도 이와 관련 있었다.

  이에 대해 본교생들은 연예인들의 비현실적인 소비 패턴을 일반적인 것처럼 보여주는 미디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대중의 삶과 유사한 김생민씨의 소비 패턴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하영(사과·16)씨는 “요즘 연예인의 삶을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부르곤 한다”며 “그만큼 연예인의 씀씀이는 대중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미디어에서는 마치 그들의 소비 패턴이 일반적인 것처럼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삶은 김구라씨보다는 김생민씨에 가깝다”며 “‘김생민의 영수증’이 내 여건에 맞게 소비하는 삶이 옳다는 것을 상기시켜줬다”고 덧붙였다.

  이소원씨 또한 “김생민씨가 가진 ‘길고 얇은’ 캐릭터가 월급을 받고 일하는 대중들의 삶과 닮았다”며 “김구라씨의 ‘아껴서 어디다 쓰냐’는 식의 발언이 대중을 향한 무시와 조롱으로 들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무조건적인 절약 트렌드가 정답인 것만은 아니다.

  지현미(경영·15)씨는 “식후에 커피 한 잔을 마실 여유도 없다면 삶이 지나치게 빡빡해질 것”이라며 “김생민씨가 절약을 하면서 행복했다면 그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도 분명 존재하기에 절약과 욜로 둘 중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혜정 교수는 욜로문화와 절약문화의 뿌리를 동일한 데에서 찾으며 유행의 순환이라고 봤다. 천 교수는 “두 문화 모두 대중이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기 보다 사회에 대한 절망과 포기가 다른 방식으로 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욜로와 절약 모두 일종의 유행에 가깝다”며 “한 사회의 유행이 순환하는 것처럼 욜로가 싫증이 나니 저축이 유행하는 것”이라고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김세완 교수는 현재 불경기 상태에 머물러있는 국내 경제 상황을 언급하며 전체적인 소비 감소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국내 GDP의 약 50%를 차지하는 소비가 감소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불경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지나친 절약문화는 대중의 소비를 감축시키는 악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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