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경 작가(동양화·99년졸) 9번째 개인전 ‘와유진경(臥遊眞景)’

윤영경 작가 개인전 ‘와유진경’의 내부 모습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윤영경 작가 개인전 ‘와유진경’의 내부 모습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강산무진 2017’… 길이 45m의 거대 수묵진경산수

  전시회장 계단을 올라 2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산맥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하얀 벽면 세 곳에 걸쳐 성인 남성의 키를 가뿐히 넘는 높이의 진경산수화가 넓게 펼쳐져 있다. 작품을 따라 걷다보면 높은 산에 올라가 경치를 내려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또 다른 방에 산맥이 사방으로 이어져 있다.

  ‘와유진경(臥遊眞景)’, 방 안에 누워 참된 경치를 유람한다. 이는 산수화를 보며 즐김을 이르는 말인 ‘와유강산(臥遊江山)’을 응용한 것이다. 진경산수화가 윤영경 동문(동양화·99년졸)의 9번째 개인전 와유진경은 진경산수화를 감상하면서 함께 즐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강과 산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강산무진 2017’(2017) 한 점으로, 길이 45m에 달하는 장대한 수묵진경산수다.

  ‘강산무진 2017’에는 거대한 산맥과 도시의 풍경이 공존한다. 산맥에 둘러싸인 건물들은 이질감을 주는 동시에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강원도 고성군, 경상남도 통영시, 경기도 과천시의 모습을 전부 담은 것인데, 모두 윤 작가가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곳이다. 윤 작가는 각 지역의 실재하는 풍경을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풍경을 그려 넣어 지역 사이를 연결했다.

  실재하는 풍경에 관심이 많던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주변 경치를 표현하고 싶었다. 어떤 방식으로 독특하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필선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윤 작가는 산수화의 필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필선은 산수화가들이 작업 초안을 그리는 과정에서 붓으로 사물의 선을 표현하는 것이다. 초안 위에 화선지를 덧대어 다시 그리는데, 보통 필선을 생략하기 때문에 완성작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윤 작가는 필선을 살려 산맥 줄기를 하나하나 그려 넣었다. 산맥의 선이 그 산의 기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도 ‘겸재 준’이라는 자신만의 기법을 발전시켰듯이, 자신도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계속 연결되는 선을 자신만의 준법으로 명명하고 싶었다.

  “이 준법을 통해 산맥의 역동성을 의도적으로 표출했어요. 산맥이 내려앉았다가 모이고 풀어지는 것을 초안의 필선이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어요. 이 과정에서 저만의 필묵법을 보여주는 것에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관람객들이 작품에서 강한 힘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가로 45m 길이 진경산수인 ‘강산무진 2017’의 일부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가로 45m 길이 진경산수인 ‘강산무진 2017’의 일부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은 윤 작가의 필선에 대해 “윤영경 작가가 꿈틀거리는 산맥을 묘사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검은 칠과 흰 바탕을 ‘윤영경준’이라고 부를 수 있다”며 “덕분에 우리 시대의 ‘신(新) 진경산수’가 가능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시회장 공간 규모상 원작을 그대로 전시할 수 없어 6장으로 나눠 전시하게 됐다. 이를 아쉬워한 윤 작가는 관람객들이 우리나라 전통 진경산수화 두루마리 양식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고민 끝에 윤 작가는 세로 55?, 가로 10m의 강산무진 축소판을 두루마리에 붙여 원작 6장과 함께 진열했다.

  “원래 선조들은 그림을 두루마리에 말아서 필요할 때 펼쳐봤어요. 원하는 곳을 보고 싶으면 딱 그만큼 펴서 보고, 또 다른 곳을 펼쳐서 경치를 유람했죠.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볼 때 손을 사용해서 그림을 넘기는 것처럼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 거예요.”

그는 이를 통해 관람객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관람객과 소통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사물을 볼 수 있는 시각적 범위가 1m예요. 그 이상의 범위를 보려면 어떤 행동을 요한다고 하더라고요. 전통산수화의 두루마리 양식은 길게 늘려 펼쳐 감상자의 움직임을 유도할 수 있는 재미있는 방식이에요. 걸으면서 그림을 보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유람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이처럼 윤 작가는 관람객과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그림을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가의 움직임을 따라 걷고, 그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작가와 감상자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관람객은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작가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 ‘강산무진 2017’에는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묘사하는 부감법이 주로 사용됐다. 윤 작가는 그 방법이 경치를 가장 넓게, 깊이 볼 수 있는 시점이며, 움직이면서 사물을 보기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묵을 통해 한국의 진경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강산무진 2017’은 26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금호미술관 2층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윤영경 작가 인터뷰

한국 전통 회화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요”

 

‘강산무진 2017’ 앞에서 포즈를 위하고 있는 윤영경 작가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강산무진 2017’ 앞에서 포즈를 위하고 있는 윤영경 작가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전통산수화와 두루마리 양식은 서양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다고 생각해요. ‘강산무진 2017’(2017) 같은 작품이 다른 서양화와 함께 걸려도 무색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에게 전통산수화는 팝아트 같은 서양화에 비해 생소한 개념이다. 이에 동양화가들 사이에서 전통을 현대에 맞게 발전시키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와의 접점을 찾는 전통산수화가 윤영경 동문(동양화·99년졸)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강산무진 2017’을 비롯한 윤 작가의 작품들은 외국에 한국 전통산수화를 알리고 그 묘미를 선보인다. 그는 독일 뮌헨(Munich)과 베를린(Berlin),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law)에서 전시했을 때 현지인들이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예전에 폴란드 브로츠와프 시청에서 초청 받아 작품을 전시했어요. 유화와 같은 서양화만 접했던 현지인들에게 한지라는 독특한 재료에 지필묵을 이용한 표현이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브로츠와프의 시가지를 그렸는데, 자신들에게 익숙한 풍경을 한국화의 화법으로 나타낸 것에 호기심을 가진 거죠. 이후에 그 작품은 브로츠와프 시립미술관에 영구 전시하게 됐어요.”

  윤 작가는 자신의 주변 풍경을 좋아하고, 그 풍경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그는 학부생 시절부터 키워왔던 그 꿈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말한다. 권위 있고 장엄한 사물이 아닌 일상적인 주변 풍경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부담을 가지지 않고 작업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가 전통산수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1997년 서울시 성북구 간송 미술관의 기획전시 때문이었다. 기획전에는 겸재 정선의 화첩도 있었다. 윤 작가는 그때 정선의 산수화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전통산수 수업을 맡았던 오용길 교수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흥미를 더 키워나갔어요. 전통산수 분야는 동양화 중에서도 인기가 적은 편이지만, 제가 전통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전통산수는 동양화의 가장 중요한 맥 중 하나인데도, 동양화의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제가 살려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실제로 동양화에 대한 관심은 서양화에 비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윤 작가는 이를 언급하며 동양화의 입지가 좁아지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순수 동양화 관련 진로를 결정하는 동양화 전공생도 매우 적다고 한다.

  “요즘 많은 사람이 한국화의 위기라는 말을 해요. 서양화에 비해 한국 전통 회화 전시가 많이 부족하고, 동양화 전공생도 줄어들고 있죠. 제가 신입생일 때 동양화과 동기가 약 50명이었는데 이제 30명도 안돼요. 게다가 이젠 이화에 전통산수를 전담하시는 전임 교수님이 한 분도 안 계세요. 예술은 직접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아야 하는데, 스승으로부터 오는 영향이 약해졌죠.”

이런 위기로 요즘 동양화가들은 한국 전통화를 어떻게 현대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윤 작가도 자신만의 필법을 통해 지필묵을 사용한 회화에서도 현대적 모색이 충분히 가능하다는걸 보여줬다. 그는 초안의 필선을 그대로 살려 현장감과 역동성을 표현하는 기법을 ‘강산무진 2017’에서 사용했다. 하지만 윤 작가는 현대적 변화 이전에 전통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일, 폴란드에서 한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그만큼 전통산수화도 반응이 좋았어요. 한국인 특유의 감성에 대한 외국인들의 호응을 봤을 때, 전통산수화 그 자체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느꼈어요. 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윤 작가는 전통산수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꾸준히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으면 반드시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사명감과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전통산수를 연구하고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또한 제 전시를 통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같은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윤 작가는 자신은 죽을 때까지 산수화를 그리고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또한 이번 와유진경전 이후의 작품활동 계획을 밝혔다.

  “이번 전시회의 테마는 제가 한국에서 살았던 곳의 풍경을 녹여내고 중간에 이상적인 경치를 넣어서 조화를 이루도록 했어요. 언젠가는 독일에서 머무르면서 누렸던 이국의 풍경을 지필묵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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