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같은 삶 일등하지 않아도 된다 벗들과 함께 완주하자

  그렇다. 전쟁과 같은 삶이다. 방금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북한의 핵탄두, 세대와 세대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삼성과 현대, 기아로 대표되는 대기업들의 위기, 그리고 최근 살충제 계란 사건으로 대변되는 환경의 역습까지…

  캠퍼스도 전장이기는 매한가지다. 학생들은 좁고 좁은 취업문을 향한 고도의 스펙 전쟁에, 교수들은 각종 정량화된 실적 전쟁에, 또 적어도 우리에게는 북핵만큼이나 위협적인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 발표까지…

  최근에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서 듣기도 부담스러운 ‘4차 산업혁명’이 또 다른 변화를 채찍질한다.

  초연결의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릴 것처럼 가공할 느낌이다. 변두리에도 초등학생 대상의 코딩학원이 속속 생겨나고 있고 대학에는 정체불명의 전공과 생경한 교과목들이 융합이라는 시대의 명분 아래 등장하고 또 사라진다.

  조금만 떨어져 바라보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태생도 불분명한 시대의 화두는 우리 시민들에게 다름 아닌 공포소구(Fear Appeal) 설득이다.

  “당신이 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ABC를 해야 하고 우리회사 DEF제품을 사야한다!”

  돌아보면 우리는 꽤 오랫동안 유사한 공포설득에 이리저리 흔들려왔다. 그런 무서운 설득은 사회도, 대학도, 심지어 가족의 일상까지도 재단하고 있다.

  환경에 맞춰 적응하는 것은 생존의 기본임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환경이 실제로 변화하는 것인지 또 우리가 판단을 가지고 변화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다른 누군가의 전략적 공포설득’에 채찍질 당하며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무서운 삶의 전장 여기저기서 많은 동료들은 지쳐 넘어지고 일어날 의지조차 없다.

  청년들이 큰 실망감에 어렵게 취업한 첫 직장을 떠난다. 40대 초에 직장에서 떠밀려난 중년들은 가족을 꾸려갈 방법이 막막하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또는 세파에 밀려나 모국을 떠난다.

  필자가 좋아하는 2008년 동경마라톤의 유명한 광고카피는 “인생과 마라톤은 완주하면 된다”이다. 1등 안 해도 된다, 글로벌 리더 안돼도 좋겠다, 벗들과 같이 가자, 피로하면 좀 쉬어가자, 또 영 내키지 않으면 거꾸로 달려보자. 대학은 비전을 따라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이제 우리 함께 완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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