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카페 ‘두잉’ 김한려일 대표

▲ 서울시 강남구 청담역 5번 출구에서 약 100m를 걸으면 볼 수 있는 두잉의 정문 모습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페미니즘과 책, 한 잔의 커피. 서울시 강남구 청담역 5번 출구에서 몇 걸음 걷다보면 샛노란색의 페미니즘 멀티카페 ‘두잉(Doing)’이 보인다.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젠더 및 섹슈얼리티 관련 도서부터 페미니즘의 역사・문화・정치 등에 관한 도서 약 800권으로 빼곡한 벽면이 있다. 국내에 오직 하나뿐인 페미니즘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한려일(신학전공 석사・10년졸) 대표를 8월31일 만났다.

  “본인이 본인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곧 페미니즘”이라는 김한 대표에게 카페 소개를 부탁했다. 그는 “두잉은 페미니즘 정신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카페”라며 “이 곳에는 페미니즘 사상에 위배되지 않는 강연, 굿즈, 전시회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다 다르지만 다 아름답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냐!’. 카페 한 켠엔 형형색색의 일러스트가 담긴 머그컵, 에코백 등 김한 대표가 직접 제작한 페미니즘 굿즈가 눈길을 끈다. “굿즈를 통해 여성, 소수자로서 느끼는 압박감과 삐걱거림 사이에서 숨통이 트이길 바라요. 너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와 해방감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 국내 유일 페미니즘 카페 '두잉(Doing)'의 김한려일 대표. 뒤편에선 고객이 페미니즘 도서를 고르고 있다.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두잉에서는 올해 2월 개점 이후 한 달에 한 번 이상 페미니즘 강연이 열리고 수시로 독서모임이 진행된다. 독서모임은 북카페 두잉 블로그에서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남을 결성해 지정도서를 읽은 후 카페에서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이 날 독서모임에 참여한 권진송(21・여・서울 관악구)씨는 “혼자 읽을 때와 다르게 책을 읽은 후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어 좋다”며 “지금보다 더 많은 모임이 만들어져 다양한 시간대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한 대표는 다양한 페미니스트가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카페라는 공간을 선택했다. “여성운동체 내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현하고 싶은 마음에 카페를 열게 됐죠. 20대 중반부터 외로운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카페를 방문하는 단골손님 박영지(24・여・서울 동대문구)씨는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곧 페미니스트”라며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함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존경하는 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성씨 ‘김’과 어머니의 성씨 ‘한’을 고스란히 이름에 담은 김한 대표. 딸만 셋인 집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 겪은 남녀차별이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20대에 들어서 남녀가 섞인 사회를 접한 후 여성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확연하게 인지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총학생회장이 아닌 부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가야만 했고 ‘학생’이 아닌 ‘여성’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불출마 선언을 했어요.”

▲ 두잉의 내부 전경. 약 800권에 달하는 다양한 장르의 페미니즘 도서들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그러나 그때부터 페미니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언제부터 제가 페미니스트가 됐는지는 몰라요. 고등학교 때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생의 한 가운데」 등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제가 흥미를 가진 장르가 페미니즘이었죠.”

  자연스레 페미니즘을 외쳐온 그에게 본교 대학원 시절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화에서의 기억을 묻자 양명수 교수(기독교윤리 전공)에게 배운 ‘아시아 신학’ 수업 내의 ‘샤머니즘’을 꼽았다. “다른 종교와 달리 샤머니즘은 유일하게 여성이 주인공이자 신이 되는 종교라서 인상깊었다”는 그는 “샤머니즘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의 한, 고통의 여성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대학생이었던 그는 모두의 해방을 위한 민주화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정권이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 여성도 당연히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80년대 말, 정권은 바뀌었지만 여성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에서조차 여성들은 약자였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카페 운영을 통해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페미니즘을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김한 대표에게도 고민은 있다. “페미니즘은 젠더 다양성을 얘기하면서 막상 그 안에서는 서로 다른 색을 띤 페미니스트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해요. 페미니스트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형성돼야 해요.” 또한, 그는 페미니스트의 성장을 촉구하기도 했다. “사람은 계속 변하고, 변해야만 하는 것이 사람이기에 남을 검열하기보단 자기검열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 가득하길 바라요.”

▲ 두잉에 방문한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 오른편에는 두잉의 기념품인 볼펜이 놓여있다.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최근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카페 운영이 어려워졌지만, 장사가 안된다고 페미니즘을 저버릴 수 없었다. “현재 개인사업자로 카페를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매장 안에 또 다른 매장을 만들어 상품을 판매하는 숍 인 숍(shop in shop) 등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일하길 원하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카페를 통해 어떤 사회를 꿈꾸냐는 질문에 김한 대표는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많이 방문해 페미니즘 안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길 원한다”고 답했다. 그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Doing Feminism(두잉 페미니즘)’을 강조했다.

  “페미니즘은 따로 책을 읽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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