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교수시위에서 최경희 전 총장의 비리를 규탄하는 피켓을 든 김 총장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새 이화, 함께 빛나는 세상.”

  제16대 총장으로 임명된 김혜숙 교수가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이화를 교내외 구성원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김혜숙 총장은 교수협의회 의장을 맡으며 재단이사회 개혁 등을 주장해 이른바 ‘학내 야당’으로 알려졌다. 작년 본관점거 농성으로 시작된 미래라이프대(미래대) 사태 동안에는 최경희 전(前) 총장과의 대치점에서 학생 편에 서고 교수시위에 나섰다. 제14대 총장 선출 당시에도 입후보했지만 고배를 마셨던 김 총장은, 교내 갈등 과정에서 보인 존재감으로 학생들의 절대적 신뢰뿐 아니라 교수, 직원, 동창 모두의 지지를 얻으며 이화의 새 리더가 됐다. 1987년부터 이화에 재직해 온 그의 30년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철학자, 그리고 여성 철학자로서의 삶

  김 총장은 1976년 본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서양현대철학 과목을 수강하며 철학이 사고의 엄밀성을 추구하는 측면에 매료됐고, 본인의 사유방식과 잘 맞는다고 느꼈다. 그렇게 철학에 매료된 그는 본교 대학원 기독교학과에서 철학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미국 시카고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식론과 철학방법론을 비롯해 여성철학, 예술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그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1980년대는 시대적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때였다. 이에 김 총장은 ‘여성철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87년 본교 인문과학대학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1993년 연구 모임을 만들어 스터디를 시작했고, 그 모임이 확장돼 1997년 공식적으로 한국여성철학회가 됐다. 이후 그는 세계여성철학자대회 조직위원장, 철학연구회 연구이사, 한국인문학총연합회장직을 역임했다. 

  그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여성철학회를 창립하고 여성철학 분야를 개척해온 것은 여자대학 교수라는 자기인식에 기반을 둔 것”이라며 “이러한 노력은 본교를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성철학의 중요한 학문적 거점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또 “여성의 자아성취와 정체성 확립에 대한 학문적 고민을 깊이 해왔다는 점, 여성의 지적 성취에 대한 높은 기준을 갖고 삶에 임해왔다는 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김 총장은 현재 세계철학연맹 운영위원, 국제여성철학회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교육자로 걸어온 길, 교육환경수호를 위한 활동

  김 총장은 학교발전을 위한 소견서에서 “대학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이화”를 만들겠다며 “대학 본연의 책무는 연구와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가치관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활동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교육환경수호 운동이다.  

  1994년 당시 정문 앞 대형백화점 럭키프라자의 입점을 두고 본교 교수 67명이 본지에 학교 앞 상업화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 총장 역시 성명에 참여하며 “국제화, 세계화의 가치를 내걸고 21세기 대학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이 순간에, 통속적 상업문화의 대학촌 침투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또 1998년부터 이어진 본교 앞 호원당 일대 재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김 총장은 ‘교육환경을 걱정하는 교수모임’(교수모임)으로 활동했다. 그는 본교 앞을 국제적인 쇼핑 명소로 개발하겠다는 서대문구청의 결정을 막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등 교육환경권을 위한 학내 운동을 이끌었다. 

  2003년 본교 앞 거리를 ‘미용특화거리’로 지정하겠다는 서대문구청의 계획이 알려지자 김 총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 총장은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미용특화거리 지정은 학생들의 기본적 인권과 교육환경권을 침해하고, 여대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명예훼손과 성차별”이라고 역설했다. 

  2007년엔 스크랜튼대학(스크랜튼대) 초대 학장을 맡아 2년간 보직을 지냈다. 신설 단과대학 학장으로서 스크랜튼대의 전공영역을 트랙 형태로 개발한 교육 모델을 정착시켰다.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기업의 요구를 좇아가는 대학이 아니라 기업과 시대를 선도하는 대학의 역할을 정립해야 할 때”라며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같은 기초학문을 기반으로 다양한 학문과의 접목을 통한 깊이 있는 연구를 강조했다. 

  특히, 스크랜튼대의 디지털인문학 트랙은 공학, 인문학, 예술을 결합한 학문으로 그가 인문학연구원장 시절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갖게 된 ‘융합학’에 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설치했다. 김 총장에 따르면 이러한 디지털인문학 트랙은 삼성전자의 관심을 끌었고 이후 삼성전자가 인문, 사회 전공자를 선발 교육해 소프트웨어 전문 엔지니어로 키우는 삼성 SCSA를 만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김 총장은 스크랜튼대의 장점으로 ‘다학제적·융합 전공 교육과정’을 꼽았다. 실제로 스크랜튼대는 국내 최초 ‘미래형 대학’ 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자유전공으로 입학한 뒤 주전공을 결정하는 스크랜튼학부의 자유전공 제도는 여러 대학이 도입한 자유전공학부의 모태가 됐으며, 트랙 제도를 통해 기초학문과 다양한 학문과의 접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내 민주화를 위한 노력

  김 총장은 이른바 ‘야당파’, ‘개혁파’로 학내외에 알려져 있다. 2002년 교수협의회(교협)를 출범시키며 2006년까지 1, 2대 회장을, 2014년부터는 7대 공동회장을 맡으면서 끊임없이 재단 이사회 개혁과 거버넌스 구조 개선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학생들에게까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작년 미래대 사태에서다.  

  정유라 입학·학사 특혜 의혹이 불거진 뒤로는 교수 시위를 주도하며 최 전 총장 사퇴 요구의 선봉에 나섰다. 이밖에도 교협은 자체 기금과 교수 모금을 통해 학생치유 모금을 진행하는 등 시위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학생 치유를 돕기도 했다.

  김 총장은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본관에 경찰이 투입되던 당시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려 대중에게도 화제가 됐다. 청문회에 출석한 그가 ‘비리교수’로 오해받자 ‘김혜숙 교수는 비리교수가 아니라 학생 편에 서서 정의구현을 위해 애썼다’는 학생들의 문자메시지가 국회의원에게 쏟아져 실시간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정유라 입학?학사 특혜 논란에 대해 “이는 시스템의 실패”라며 “교협 차원에서도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검찰조사를 통해 인적 매개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미래대 사태를 겪으며 그는 현재 드러난 이화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이화로 나아가기 위해 ‘열린 신뢰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학교발전에 관한 소견서에서 “지금껏 이화가 안고 있었던 고질적 문제는 자유로운 소통의 부재와 지나친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문화”라며 “이제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이화를 자율적이고 기능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책임 있는 행정이 이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김 총장의 총장직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0년 간선제로 진행됐던 제14대 총장후보 선거에도 입후보 등록했으나 당시 김선욱 전 총장이 당선되면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올해 이화의 전 구성원이 참여한 직선제 선거에서는 달랐다. 작년부터 이어진 이화의 갈등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학생을 지지하고, 교협 공동의장으로서 행동하고, 교수 시위를 주도하며 과반 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 재도전에 성공했다. 결국 131년 개교 이래 유례없는 직선제 선거에서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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