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국가적으로도 시끄러웠던 한 해 동안 이화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혼란을 겪었다. 알바를 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내가 이대를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살 어린 동생이 그렇게 물어봤던 게 기억난다. “누나 정유라 본 적 있어요?” 아니 애초에 학교를 나오지를 않았는데 마주칠 일이나 있었겠니?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삼학년이 되었다. 

  사망년, 헌내기, 헌내기는 싫어 정든내기,몇 학년이니? 라는 질문을 받으면 스물두 살 이예요, 삼학년이요! 라고 나이를 먼저 얘기한다. 삼학년보다는 스물두살이 나은 것 같아서. 그런데도 이제 취업 준비 하느라 힘들겠다. 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저는 아직 들어야 할 학점도 태산인데요? 강단 있게 휴학 신청을 한 동기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스펙을 위해 치열하게 대외활동을 하는 동기들도 여럿 보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휴학도 대외활동도 모르겠다. 캠코더를 들고 저 멀리까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다니며 인스타그램에 영상이나 올리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거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회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경쟁에 저항하는 용기를 가진 성공한 베짱이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수많은 경쟁을 견뎌내고 많은 패자들 위에 우뚝 선 일인자가 되는 것일까. 둘의 공통점은 어쨌든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니 어쩌면 그전의 무수한 과정들은 아무렴 상관이 없고 성공의 결과만 이뤄낸다면 그만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작년으로 돌아가서, 여성학이라는 것도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도 자세히 모르던, 그저 반에서는 일등을 하고 싶던 부모님의 착한 딸이었을 수많은 학생들은 후레쉬를 켜고 다 같이 교내를 행진했다. 그리고 올해 5월의 막바지, 가장 학생들 곁에 가까이 계셨던 교수님께서 총장 선거에 당선되셨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옳았었음을 다시 한 번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이화의 딸들은 사회에 나가 계속해서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옳은 것이 결국은 이기고 마는 짜릿한 성공은 경험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더 힘을 내야 한다. 수십 년 후 이화에서 맞서 싸운 학생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작년과 올해 대한민국 역사가 국사책의 한 부분에 기록되었을 때 즈음에, 그때의 사회는 성공만이 목표가 아닌,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되는 행복을 목표로 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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