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래라이프대 사태를 겪으며 이화의 총장직이 공석이 된 지 약 7개월. 그동안 본교에는 ‘총장 리더십’의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최경희 전(前) 총장은 여러 사업을 학내 구성원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추진하면서 ‘불통 총장’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는데, 이에 이화 구성원들은 새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을 ‘소통’으로 꼽기도 했다. 그렇다면 21세기, 특히 내홍을 겪어 온 본교의 현 상황에서 요구되는 총장의 리더십은 어떤 모습일까. 본지는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 이덕환 서강대 교수에게 오늘날 대학 총장의 리더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기고를 받아 소개한다.

 

  방법에 대한 갑론을박 넘어 학자적·도덕적·탈권위적 리더십 찾아야 할 때

  대학 현실이 암울하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윤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최악의 고비용·저효율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청년들을 좌절에 빠뜨린 취업절벽과 인구절벽이 모두 대학의 잘못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교육보다 취업과 창업이 우선이고, 학문의 증진을 위한 노력보다 정부와 기업의 용역 연구가 강조되는 대학의 현실은 절망적이다.

  연구와 교육은 제쳐두고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들이 넘쳐나고, ‘석학’을 자처하는 ‘길거리 학문’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교수들도 많다. 학생들이 어렵게 낸 등록금으로 퇴직 법조인·관료·정치인들의 경력 관리를 해주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학령인구는 급격하게 줄고, 반값 등록금으로 대학의 재정은 어렵고, 소위 ‘교육 마피아’의 횡포가 도를 넘는 현실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세계화를 핑계로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학령인구 감소를 핑계로 대학을 뒤집어 엎어보겠다는 엉터리 교육 정책의 문제도 심각하다. 학생·학부모·사교육 시장이 똘똘 뭉쳐서 대학 입시를 무력화시키는 현실이 오히려 대학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하소연도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학이 이 지경으로 추락한 근원적인 원인이 대학 외부에만 있지는 않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져 대학의 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해왔던 교수들의 책임도 무겁다. 민주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20여 년 전 시작됐던 총장 직선제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다. 정치판에서도 보기 어려워진 부끄러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선거 후에는 논공행상의 성대한 잔치판이 벌어지는 현실은 온전하게 교수들의 책임이다.

  정부의 직선제 폐지 정책에 반발하던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도 있었지만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대학을 이끌 충분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총장 후보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하지 않고, 선거의 형식이나 절차에 대한 갑론을박만 계속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진실은 애써 외면한다. 총장 선출의 방법이나 절차보다 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수준 높은 성찰과 반성이 훨씬 중요하다. 실용서 수준의 리더십 덕목만으로는 무너진 대학을 살릴 수 있는 총장을 가려낼 수가 없다.

  대학을 학문과 지성의 전당으로 바로 세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총장이 필요하다. 학문과 지성은 고고한 우리의 전통과 문화 속에서만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후보를 찾아야 한다. 물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전통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금을 받아내고, 캠퍼스를 더 화려하게 개발하고, 정체불명의 융합·혁신·창업을 추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후보는 경계해야 한다. 근본을 알 수 없는 개혁을 외치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회·문화·경제 환경에서 작동하는 낯선 제도를 흉내 내야 한다는 패배주의적 모방·추격형 사고방식으로는 대학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또 대학에서 수행되는 연구의 가치와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총장을 선출해야 한다. 진지한 학자적 자세로 학문 연구에 몰입해본 경험을 가진 후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의 연구가 교수의 주머니나 대학 재정을 채워주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연구 성과는 논문·저서·특허의 숫자를 통해 계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수의 연구 역량을 언론의 화려한 찬사나 대중의 뜨거운 환호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맹목적인 경쟁을 통해 교수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대학에서의 학문 증진과는 거리가 멀다.

  교육에 대한 확고한 인식도 필요하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인 교육은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위한 고위험의 투자다. 학생들이 직면하게 될 모든 환경에서 자신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학생들이 원하는 달콤하고 재미있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어렵고 재미없을지라도 가르쳐야 할 것이라면 반드시 가르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특히 범지구적 공동체에서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면서 이웃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지혜를 길러줘야 한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어설픈 미래학의 예언을 마치 예정된 미래인 듯이 들먹이면서 어설픈 ‘맞춤형 교육’을 강조하는 총장 후보는 가려내야 한다.

  대학 총장의 소임이 단순히 대학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학자적 양심으로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회 원로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지향해야 하는 미래 비전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구성원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품격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의 잘못된 요구를 당당하게 물리칠 수 있는 정치적 역량도 필요하다. 대학 안에서 내 이익을 보장해주고, 내 목소리를 대변해줄 대리인을 뽑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물론 탈권위적 소통의 리더십도 중요하다. 권위주의적 총장이 설 자리는 오래 전 사라졌다. 교수·학생·직원과 낮은 자세로 공감, 소통할 수 있는 총장을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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