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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세계··· 그림으로 빛깔을 드러내다
2017년 05월 22일 (월) 유현빈 기자 heybini@ewhain.net
   
 
  ▲ 스테인리스에 추상화를 얹은 작품 앞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권현진 작가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밝은 곳에서 고개를 들고 눈을 꼭 감으면 눈꺼풀에 빛의 잔상이 맺힌다. 이 잔상은 시시각각 움직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권현진(서양화·03년졸) 작가는 이런 환영을 그의 예술세계로 들여왔다. 권 작가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만나보기 위해 6월10일(토)까지 표 갤러리(서울시 용산구)에서 개최되는 개인전 ‘불가시의 가시화’를 찾았다.

  권 작가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랑이나 공기처럼 눈으로는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불가시적인 요소들에 관심을 두던 그는 내면의 감정이나 잔상들을 직감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이미지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눈을 감았을 때만 망막에 맺히는 불규칙한 빛의 환영이나 상상으로만 느낄 수 있는 내면의 소리, 파동 등을 표현하기 시작한 거죠.”

  기존의 추상화는 사물의 외형을 이루는 요소를 지우는 작업이다. 사물의 시각적 외형을 표현하는 원근감, 그림자, 외곽선 등을 삭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권 작가의 추상화는 보이지 않는 것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는 형태가 없어 인간의 언어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저는 요즘 초끈 이론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1~3차원의 세계 외에 보이지 않는 차원이 있다는 이론이죠. 그 세상은 끈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요. 우리가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분자들과, 파동이나 진동 같은 패턴들이죠. 저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들을 공부하며 모티브를 얻기도 해요.”

 

   
 
 

▲ 5월13일부터 6월10일까지 한남동 표 갤러리에서 권현진 작가 개인전 '불가시의 가시화'가 열린다. 사진은 Visual Poetry Sculpture 여섯 점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 캔버스에 추상화를 그린 작품 Visual Poetry 세 점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권 작가는 원색들로 일렁이고, 이리저리 번지는 가상 세계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았다.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며 쉬지 않고 모습을 바꾸는 환영들을 표현한 영상들을 만들었고, 캔버스 위에 그리고 말리기를 반복해 물감의 층을 셀 수 없이 켜켜이 쌓아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가 하면, 조각회화 분야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가 개척한 조각회화란 ‘스테인리스 스틸을 망치로 두드리고 발로 밟아 구부려 굴곡을 만들고, 그 위에 이미지를 입힌 후 구워낸 작품’을 일컫는다. 만들어진 굴곡에 조명을 비추면 그림자가 생기는데, 작품을 보는 각도나 빛에 따라 색이나 작품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을 의도한 것이다.

  “조각회화는 가변적인 추상 이미지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시도예요. 움직이는 듯한 모양 덕에 어떤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돼있지 않고 역동적인 느낌을 줄 수 있죠. 입체나 평면으로 정의할 수 없는 ‘회화와 입체의 중간 지점’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회화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진하게 농축된 물감을 층층이 겹쳐 작업했다.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미디엄(물감을 칠할 때 물감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잘 붙도록 하는 물질)과 우레탄을 섞어 사용했다. 우레탄은 회화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 화학물질이다. 권 작가는 기존에 없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기법을 개발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상상 속의 세계를 색다르게 표현하는 데 적합한 재료를 찾기 위해 수많은 재료를 계속해서 시험했어요. 유해한 화학성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재료를 밀폐된 공간에서 장갑도 끼지 않고 다뤘죠. 그러다 보니 독이 올라 두드러기가 나거나 눈, 코, 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부었던 적도 있어요.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라 미국에 있었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했죠.”

  권 작가는 추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캔버스 대신에 벽면을, 물감 대신에 영상과 같은 미디어를 사용하는 식이다. 그는 “미술계에서 ‘영역’으로 구분 지어지는 장르들을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며 “추상화 자체를 더 입체적이고 다양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도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동시대의 추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시도 중 하나는 렌티큘러(lenticular) 기법이다. 렌티큘러 기법은 작품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이 보이는 효과다. 그는 이 기법을 활용하기 위해 렌티큘러 전문 제작회사에 의뢰해 열두 개의 작품 이미지를 낱낱이 쪼갰다. 작품을 보는 각도와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극단적인 착시와 환영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추상화와 가상 세계가 가진 역동성을 드러내기 위해 미디어아트를 이용했다. 권 작가는 영상의 배경에 수많은 그림을 깔고 그 위에 안구에 맺히는 환영의 움직임을 컴퓨터 프로그램의 시각효과로 표현해냈다. 이 영상의 장면들은 한 컷 한 컷 분해됐고 다시 합쳐졌다.

  “영상은 움직임을 담아내죠. 영상을 보면, 앉은 자리에서 추상회화 작품들을 연이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영상은 회화작품들로 구성됐지만, 영상 안에서 갖가지 효과를 통해 그림 속의 움직임이나 환영이 보이길 바랐어요.”

  작품 기법을 개발하고 연구하며 미국 유학을 마무리한 후, 수년 전 한국에서 처음 연 전시는 ‘의미를 알 수 없어 난해하고 어렵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권 작가는 추상화에 담긴 의미나 감상은 오롯이 각자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추상화를 보며 어려워하는 이유는 그림의 요소들에 작가가 숨겨둔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그림에서 ‘숨은 의미’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권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캔버스의 프레임 안에서 작품은 끝나지만, 그 작품에서 벗어 난 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착시현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보는 과정에서 2차원의 회화작품으로 그림 속 세계의 역동성과 시각적 환영, 작품 너머에 이어진, 보이지 않는 선들을 상상해주면 좋겠고요. 앞으로도 캔버스와 캔버스 밖의 불가시 세계를 표현하는, 색다른 시각적 자극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 17일 오후6시 한남동 표 갤러리에서 권현진 작가가 자신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선모은 기자 monsikk@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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