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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과 4.16
2017년 05월 22일 (월) 강서윤(사과·16) -

  오늘은 5월 18일이다. 광주 민중항쟁의 날이자, 나의 26번째 생일날.

  태어나는 순간부터 518이라는 숫자와 함께 했다. 기억하는 가장 오랜 순간부터 내 방 달력에 표시해둔 생일 밑에는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날’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런 내가 지난 주 처음 광주에 다녀왔다. 그냥 간 것은 아니고, 5.18 전 주 주말에 있는 5.18 광주 역사 기행과 대학생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생 대회 문화제에서 같이 간 동생 품에 안겨 많이 울고 말았다.

  좀 더 크고 수업 시간에 생일날에 적힌 그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웠고, 내가 5.18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5.18은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부분이었다. 5.18 민중항쟁 묘역에 가보니 알 수 있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부끄러웠고, ‘왜 이제야 왔을까’ 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눈물이 많이 났다. 참을 수가 없어서 모두가 흥겨운 틈을 타서 펑펑 울어버렸다.

  나는 소위 학생운동이라는 것을 한다. 집회에 가면 활동가 분들과 꽤나 많이 인사를 할 수 있다. 운동권. 그 말 하나에 한정되고 싶지 않다. 운동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한 가치들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운동권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학생운동에 정말 열심인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남들의 분류에 재단되기엔 내게 많은 특징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3살. 고졸 출신의 사회인으로 대학에 갈 결심을 했을 때, 내 앞엔 세월호 참사, 무능력한 정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 직원을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하는 사회가 있었다. 나를 찍어 누르는 압박감이 끔찍했고, 나는 가진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수능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25살 나는 이화에 왔다. 대학에 왔다고 모든 것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늦깎이 새내기였지만 나는 여전히 어리고, 부족한 사람이다.

  1992년 5월 18일. 그날은 음력으로는 4월 16일이다.

  한 없이 모든 것이 괴로울 땐, 왜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도록 생일마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늘 든다. 그저 나는 바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떠한 모욕과 폄훼 앞에 세워질 수 없는 세상이 되기를.

  새로운 세상은 남이 아니라 모든 ‘내가’ 모여 만들어내는 것임을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스물여섯의 오월. 나는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지만 또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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