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점을 아예 모르는 경우는 많지 않겠지만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두 단어를 동의어쯤으로 여기고 사용하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틀린 그림 찾기’다. ‘Spot the difference’라 불리던 게임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다른’이 아닌 ‘틀린’으로 해석된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인들은 difference와 wrong을 연결시키기조차 힘겨워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둘의 차이를 규명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다른 것을 틀리다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특징은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다양성을 인정하기 보다 자신이 옳기 때문에 상대방은 틀렸다고 쉽게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은 다른 것에 틀렸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내면화되고 당연시된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했다. 즉, 공자는 이름에 부합하는 실체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고 말하며 둘의 일치를 중시하였다. 이처럼 이름은 실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며 이름에는 그를 부르는 사람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둘의 차이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그저 습관처럼 둘을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말 한마디 한마디의 엄청난 힘을 간과한 변명일 뿐이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표현함으로써 사회에서 공존의 미학은 점차 사라지고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은 자연히 극복해야 하는 틀림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대상을 이해하고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틀린 것에는 틀렸다고 주장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겠으나 당장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표현 하나의 엄청난 힘을 인지하고 당신의 편했던 귀가 불편해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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