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진’이라는 용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트라이젠더’나 ‘에이젠더’는? 

  이 용어들은 모두 젠더에 관한 것으로, 기존의 이분법적인 젠더 구분을 벗어난 성 정체성을 나타낸다. 이 용어들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페이스북에 게시된 성 소수자에 관한 글을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글에 쓰인 이런 용어들을 이해하는 것이 버거워 위키백과에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읽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3의 성 등 기존의 남성과 여성으로만 젠더를 나누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많이 만났다. 또 성 정체성뿐 아니라 성적 지향에서 역시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분류를 제시하는 용어들을 발견했다. 

  이러한 용어들을 찾아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의문에 봉착했다. 왜 이렇게 피곤할 만큼 세세하게 젠더를 나누고 하나하나 용어를 만드는 것일까? 굳이 머리 아프게 따지지 않아도 사랑하는 대상을 그냥 사랑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이런 꿈 같은 소리는 지금 이 곳에 실재하는 성 소수자들의 존재를 지운다는 점에서 마냥 곱게 받아들일 수 없다. 언어 권력 측면에서 접근해보자. 왜 앞서 언급한 ‘안드로진’과 같은 용어가 어렵게 다가올까? 바로 낯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성별을 남성과 여성으로 두 조각낸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 사회는 시스젠더, 즉 사회에서 지정한 자신의 신체적 성별과 자신이 느끼는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들과 이성애 중심의 사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스젠더들이 가지는 이성애 중심의 언어에 비해 그렇지 않은 언어는 사용되는 빈도가 현저히 낮으며, 때로는 아예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요는, 이런 상황이 성 소수자들에게는 무척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언어에서의 권력 구조를 줄여나가고, 소수자의 언어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고, 소수자를 지우는 단어의 사용 빈도를 줄여야 하며, 또 그런 단어의 대체어를 찾아야 한다.

  이는 비단 성 소수자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에게도 필요하다. 내가 읽었다는 그 페이스북 게시물에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은 ‘왜 모르는 말을 써서 아는 척을 하냐. 찾아보기 귀찮으니 설명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모르고, 또 찾아보기 귀찮은 이유는 어쩌면 당신이 언어의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아는 말이 되도록 많이 사용해야 하고, 다소 귀찮더라도 찾아 봐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바뀐다. 그러니 잠깐 시간을 내어 내가 위에 제시한 ‘안드로진’과 ‘트라이젠더’, ‘에이젠더’를 찾아보자. 그리고 연관검색어를 하나씩 눌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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