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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려도 괜찮아, 열정 가득한 늦깎이 작가
2017년 03월 12일 (일) 이다솜 기자 dlektha0@ewhain.net
   
 
  ▲ 의자 속에 휴식, 따뜻함을 담아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고자 한 ‘Turkish Delight’전의 배수경 작가. 이우림 기자 rainforest25@ewhain.net  
 

“매미가 오랫동안 땅에서 기다리는 것처럼 저도 기다림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요?”

 

 미술을 독학해 주부에서 뒤늦게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가 자신의 삶에 대해 건넨 말이다. 배수경(전산·85년졸) 작가가 말하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그의 자유로운 작품세계를 들여다보고자 8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배 작가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집안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미술에 대한 깊은 열망으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왔다.

 

 배 작가는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틀에 짜인 것만 공부하다 보면 자신만의 기법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성이 없어질까봐 예전부터 다른 작가의 전시도 잘 보러 다니지 않았어요. 미술을 독학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대로 그리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지만, 오히려 혼자 고민하며 그린 것이 더 도움됐던 것 같아요.”

 

 늦깎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림을 꾸준히 그렸다. 그는 2014년 공모전과 아트페어에 나갔고, 작년 1년 동안 100점 가까이 작업했다. “예술의 전당 작가 스튜디오 입주 작가 13명 중 심사를 통해 선정된 2명에게 전시를 열 기회가 주어져요. 작년 11월 심사위원들이 제 독창성을 높이 평가해 이번 기획 초대전을 열게 됐어요. 사실상 이번 전시회가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첫 개인전인 셈이라 저에게 더욱 특별해요.”

 

 이번 전시 타이틀인 ‘Turkish Delight’에서도 배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 항상 행복하고 기쁘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delight(기쁨)를 느끼길 바랐다. “delight에서 Turkish Delight라는 터키 과자가 떠올랐어요. 또 과자의 다채로운 이미지가 제 그림의 풍부한 색감과 비슷하다고 느꼈죠. 작품 제목 역시 Turkish Delight에 쓰이는 재료들인 견과류, 과일 등의 이름이에요.”

 

 그는 모든 그림을 즉흥적으로 그린다. 배 작가는 밑그림을 그리고 시작하면 그것에 얽매인다고 생각해 스케치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에요. 이 그림은 무엇이 될 것이라고 정해놓으면 즐겁지 않아요. 제가 즐거워하는 과정을 거쳐 나오는 그림은 어떤 그림이 돼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느끼고 싶어요.”

 

 배 작가는 주로 점묘법을 사용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특이한 방식으로 그린 작품도 있다. ‘Delight-161’(2016)은 붓으로 물감을 떠 바닥에 눕힌 캔버스 위에 올리는 방식으로 탄생됐다. 작품 속 의자를 묘사하는 선은 물감을 짜는 방식으로 표현됐다. 이 외에도 캔버스를 눕힌 상태에서 물감을 부은 후, 비닐장갑을 껴 문지르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다보니까 손목이 아프더라고요. 손목을 아프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다보니까 비닐장갑을 이용한 표현법을 찾게 됐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Turkish delight’(2017)와 'Walnut’(2017)이에요.”

 

 배 작가는 ‘Coconut powder’(2016)와 ‘Gummy bear’(2016)를 그릴 때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제가 원하는 의도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을 때는 제작 기간이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많은 실패를 통해 탄생한 작품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특히 좋아해줬죠. 이런 반응을 보면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어 그는 전시된 약 30점의 작품에 등장한 의자에 대해 설명했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소재인 의자에 기능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의자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좋은 감정, 기분 좋은 느낌이 많이 들어가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의자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고 쉬어가게 하죠. 의자로 휴식, 따뜻함을 얘기하고 싶었거든요.”

 

 또한, 그의 작품에는 짝을 이룬 의자 역시 존재한다. 이 의자들은 서로 포개어 있는 형상으로 그려졌는데 이런 모습이 마치 연인이 마주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Nougat'(2016)은 한 쌍의 의자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한 의자는 네모난 의자 형태로 남성적인 느낌을 주지만 분홍색을 사용해 여성적인 느낌도 존재한다. 다른 의자도 여성적인 형태에 남성적인 느낌이 공존한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했어요. 의자로 휴식을 줄 뿐만 아니라 남녀라는 대립적 개념의 공존을 표현하고 싶었죠” 

 

 평소에 배 작가는 자화상과 과일, 컵 같은 사물 하나를 화면 가득히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이중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그림의 좌우 비대칭은 제 이중성을 표현한 거예요. 한쪽은 사회에 맞출 수밖에 없는 슬픈 모습, 다른 한 쪽은 내면의 열정이 가득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죠.” 또한 그는 자화상 속 식물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꿈과 열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미술을 향한 꿈을 이룬 그는 앞으로도 그림을 즐겁게 그리고 싶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한계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당장 이뤄지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계속 도전하고 노력한다면 어느새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배 작가의 ‘Turkish Delight’ 전은 서울시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22일(수)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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