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verse는 ‘우주, 또는 세상의 다양한 존재들이 하나로 모아져 있는 공간’을 나타낸다. Universe와 같은 라틴어 어원(語原)에서 유래된 University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오늘날 대학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공간’이 됐다.  


  다양성으로부터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 간 충돌, 토론 및 합치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생각만큼이나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정하는 진리는 시가변적(時可變的)이다. 한때 절대 진리로 간주되었던 천동설이 대표적 사례다. 


  대학 내 토론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되, 이를 감정적으로 깔아뭉개거나 인격적 모독을 해선 안 된다. 음식이 상하면 그릇에 담긴 상한 음식을 버릴 뿐이지 그릇 자체를 던져 버릴 필요는 없다. 분노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지금 당장은 너무도 답답해 보이는 상대방의 어긋남이 내일의 진리로 등장할 수도 있다.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은 학자의 덕목으로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강조했다. 논리적으로 냉철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되,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바탕돼야 한다는 뜻이다. 마샬의 연구실 문에는 ‘런던의 빈민굴에 가보지 않은 자는 이 문을 두드리지 말라’는 글이 붙어있다. 사랑이 없는 대학은 공허하며, 진리에 다다르기 어렵다.


  성경의 신구약 66권의 내용을 요약하면,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누가복음 10:27)”고 한다. 증오와 분노는 쉽지만, 사랑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야 이룰 수 있는 어려운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 더 나아가 내게는 너무도 틀려 보이는 주장을 강권하는 동료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대학은 이를 이뤄가야 한다. 다양한 것들이 서로 부딪혀가며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명을 맡은 대학에서 이를 이루지 못하면 대학은 사회의 선도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비록 사회 일각에서 ‘뜨거운 머리와 얼음장 같은 가슴’으로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어두움이 판을 치더라도, 대학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이 사회의 희망이 비로소 되살아 날 것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 실천방법으로 맹자(孟子) 이루(離婁)편에 “애인자 인항애지(愛人者 人恒愛之), 경인자 인항경지(敬人者 人恒敬之)”라는 말씀이 있다. 번역하면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이 항상 그를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이 항상 그를 공경한다”는 뜻이다. 내가 ‘뜨거운 머리와 얼음장 같은 차가운 가슴’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상대 또한 내게 그렇게 대할 것이지만, 내가 절제하고 양보하여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다가가면 상대 또한 언젠가는 사랑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제껏 각자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굳어진 ‘믿음’이 있고 바람직하다고 추구해 온 ‘소망'이 있겠지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 전서 13:13)”. 아름다운 캠퍼스에 불어올 한가람 봄바람에 사랑의 이화가 가득 피어나기를, 더 나아가 황화방의 향기가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랑의 힘으로 이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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