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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불편함에게 건네는 위로 "그래도 잘하고 있어"
2017년 03월 06일 (월) 정혜주 기자 pondra@ewhain.net
   
 
  ▲ 2016년 장애대학생 도우미 지원 사업 체험 수기 공모전에서 도우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준형씨 김수연 기자mangolove0293@ewhain.net  
 

  “그 아이의 삶에 대한 열정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으며, 삶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줬다.” 

  교육부가 주최한 2016년 장애대학생 도우미 지원 사업 체험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의 일부다. 수상자 이준형(상담심리학 전공 석사과정)씨는 2015년 2학기 본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수민(가명)씨의 도우미 역할을 맡았다. 수기 속 그들의 경험담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2월28일 ECC 한 카페에서 이씨를 만났다. 

  이씨는 재작년 학생처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조교로 근무했다. 그 해 9월 수민씨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찾아왔지만 이미 학교에서 지원하는 장애학생도우미(도우미) 선발은 끝난 후였다. 어쩔 수 없이 이씨가 잠깐 도우미를 맡기로 한 것이 한 학기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수민씨는 과거에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를 다쳤다. 이로 인해 기억 저장에 어려움을 겪는 인지적 장애를 앓게 됐다. 이 때문에 수민씨의 삶은 이전과 달라졌다. “처음 만났을 때 수민이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와서 다른 사람들 것으로 연락했어요. 만나자마자 여러 개의 핸드폰 번호로 연락했던 사정을 설명했는데, 얼마 후에 ‘왜 번호가 여러 개냐’고 다시 묻더라고요. 전에 말했던 것을 아예 들은 적이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같은 충격이었죠.” 

  “한번은 수업 시간에 본 영화를 바탕으로 리포트를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수민이가 영화를 보는 도중 앞의 내용을 잊어버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를 다운 받아 집에서 돌려 보며 내용을 모두 받아 적어 과제를 한 적이 있었다고 말한 적 있어요.”

  계속해서 기억을 잃는 상황에 수민씨가 학교를 다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강의 도중 무언가를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고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런 자신이 이상해 보일까봐 늘 두려워했고 눈치를 봤다. 일부 사람들이 기억 장애를 납치, 사기 등 범죄에 악용할 수 있어 본인의 장애 사실이나 인적 사항을 쉽게 밝힐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를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것은 이씨의 몫이었다. “수민이가 주변 사람들한테 ‘노력으로 극복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너는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줬죠.”

  수민씨는 현재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외국으로 돌아갔다. 이씨는 수민씨가 본교를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화 캠퍼스가 그려진 손거울과 편지를 함께 줬다. “수민이가 저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지만 말하진 못했어요. 그런데 수민이가 저에게 '언니를 잊으면 어떡하죠?'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수기에 썼던 것처럼 '걱정 마. 너 대신 내가 다 기억할게'라고 말했고, 편지에도 그렇게 썼어요. 나는 네가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도 썼어요. 수민이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죠.”

  이씨는 수민씨로부터 두세 달에 한 번은 연락이 와 신기하다고 말했다. 수민씨는 어떤 기억을 길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억이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민이가 카카오톡으로 ‘우리가 아주 친한 사이였나요?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해주세요’라고 보냈을 때 굉장히 슬펐어요”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2004)의 여주인공 루시는 사고 후유증으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가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는 최대 기한은 하루다. 그렇지만 루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기억하고 매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수민씨가 이씨에게 꾸준히 연락을 하는 것은 루시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민씨와의 만남 이후, 이씨의 삶은 변했다. 이전에는 장애인의 삶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아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이 무겁고 힘겹다는 것을 느꼈어요. 수민이에게 갑작스럽게 장애가 찾아온 것이고,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잖아요. ‘나만 아니면 되지’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씨가 체험 수기를 출품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실제로 수민씨와 지내면서 수민씨에 대한 학교의 배려와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본교에서도 처음 있던 상황이고, 수민씨는 장애 등급 판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러한 사실을 알려 희귀한 사례라는 이유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 학생들의 처우가 개선되길 바랐다. “세상에는 이런 삶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수민이에게도 그에 맞는 지원이 필요한데, 흔치 않은 경우라 지원이 잘 안됐거든요. 교육부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이니, 교육부에 이런 부분도 고려해 달라고 알리고 싶었죠. 교육부 관계자들에게 제가 전하려던 것을 알릴 수 있게되 다행이에요.”

  이씨는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으로 도우미를 시작했지만 그 바람은 더 확대되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현실을 알리기까지 이르렀다. 도우미도 상대방에게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씨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도우미는 장학금을 받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처럼 지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처음부터 봉사의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도우미 활동을 하며 장애인에 대한 마음과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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