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문제가 나라의 문제로 확대되고,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이냐는 고민이 태극기와 촛불, 양극단의 싸움으로 점점 커지는 사이, 불통, 혼돈, 분노는 나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휘감아버렸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가쁘게 숨을 쉴 때 ‘뮤’가 나에게로 다가와 내 피로한 일상의 활력소가 됐다. 

 ‘뮤’는 아비시니안(Abyssinian) 품종의 호기심 많고 정이 넘치는 암컷 고양이다. 고양이 다섯 형제 중 어떤 녀석을 데리고 올까 고민할 때 내게 눈빛으로 말한 녀석이 ‘뮤’였다. “아빠 바로 저예요."라고. 

 어릴 적부터 결벽증이 있었던 나는 성격 좋은 아내를 만나 지저분한 많은 것에 익숙해지며 살아왔지만, 반려동물의 냄새와 분비물이 몸에 닿는 것만큼은 견뎌내기 어려웠다. 까칠한 혀로 핥을 때와 촉촉한 콧등을 내게 비벼댈 때마다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씻곤 했다. 

 그랬던 내게 작은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든 옷을 털옷으로 만들어버리는 ‘뮤’ 앞에서 깔끔한 체하기를 포기하게 된 것도 하나의 변화지만, 얼굴에 잔뜩 묻은 분비물이 말라서 허옇게 자국을 남기는 순간에도, 배변 후 바로 달려와 내게 엉덩이를 문질러댄 그 순간에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뮤’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불치병이라고 여겼던 나의 결벽증이 극복됐다. 

 그런 복덩어리 ‘뮤’가 얼마 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의 피 검사에서 의사는 복막염을 의심했다. 특이 증상은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뽀뽀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잘 먹지 않았으며 구석에 숨어 잠자는 시간이 늘어갔다. ‘뮤’를 떠나 잠시 해외 출장 중인 지금 췌장염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종일 멍하고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누가 건들면 때는 이때라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적어도 15년 이상 함께 늙어갈 생각으로 데리고 온 녀석인데 ‘뮤’는 길어야 2년일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야 말았다. 

 얼마 전 본 영화 '컨택트'(2016)에서 주인공인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떠올랐다. 자신의 아이가 어린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루이스는 미래의 아이 아빠 이안에게 다가올 일을 알 수 있다면, 그 미래를 바꿀 것인지 질문한다. "당신 인생을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있다면 그걸 바꾸겠어요?(If you could see your whole life from start to finish, would you change things?)" 다시 내가 내게 질문한다. ‘뮤’의 미래를 알면서도 그녀를 데려왔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행복에 대한 어떤 보장도 없다. 우리는 다만 선택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최선을 다할 것인가 대충할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나의 고양이 ‘뮤’뿐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보내겠다. 내게 주어진 시간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내겠다. 그것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뮤'가 나에게로 다가와 자신이 원했던 게 바로 그것이라 말해주었다. 작은 몸집의 ‘뮤’가 내게 일러준 복음 같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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