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 김수안 기자 suek0508@ewhain.net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82년생 김지영」 中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최근 출간된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이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다. 주인공 ‘김지영’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불합리에 부딪힌다. 하지만 그 충돌은 조용하고, 태연하며, 당연하다. 이것은 주인공 ‘김지영’의 이야기이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김지영’의 이야기다.

  담담한 어조로 한국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 뒤에는 조남주 작가(사회·01년졸)가 있다. 조 작가는 본교 졸업 후 10여 년간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다 2011년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세 번째 소설인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을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그가 기록하고 싶었던 한국의 여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22일 오전 조 작가를 만났다.

  “아이가 12시면 학교에서 돌아와서요. 집 근처에서 뵙게 되어 죄송해요.”

  기자가 마주한 조 작가는 수수한 차림의 30대 주부였다. 인터뷰 장소를 자택 근처 카페로 고른 것도, 시간을 이른 아침으로 정한 것도 순전히 아이를 위해서라고 했다. 서로 처음 마주했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던 것은 그와 소설 속 ‘김지영’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리라.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다. 서울 변두리의 24평 아파트에서 남편과 유치원생 딸과 함께 사는, 전업주부 김지영 씨. 큰언니와 남동생 사이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할머니의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한 차별을 몸소 겪으며 자랐다. 짝꿍 남학생의 괴로운 ‘장난’에도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했다. 취직에 거듭 실패하자 아버지는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라’고 했다. 다행히 무사 취업해 바쁘지만 즐겁게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관뒀다. 유모차를 끌고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김지영에게 사람들은 ‘맘충’(mom과 충(蟲)을 결합해 극성 엄마를 비하하는 신조어)이라고 했다.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오히려 평범하기에 대변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독자에게 주는 파장은 크다.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를 꿈꿔왔지만 끝내 ‘맘충’으로 전락해버린 그녀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실제로 1982년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다.

  “요즘 드라마에는 여주인공이 자기 꿈을 찾아가고 남자가 그걸 돕는다는 내용도 많잖아요. 물론 그게 이상적인 방향이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만큼은 아주 현실적인 톤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불합리에 맞서는 투사 김지영보다는 조금은 답답해도 어디선가 정말 살고 있을 법한 김지영을 주인공으로 세웠죠.”

  조 작가가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재작년 즈음 인터넷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목격한 때였다. 여성혐오는 1999년 군가산점 폐지가 계기가 됐지만 작년 6월 여성혐오에 대항하고자 생겨난 커뮤니티 ‘메르스 갤러리’가 논란이 되면서 다시금 화제가 됐다.

  “우연히 ‘맘충’이라는 단어를 접했어요. 여성을 비난하는 세태를 꼬집는 기사였는데, 오히려 댓글에서는 ‘욕먹을만하니까 욕먹는 거지’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 욕을 먹을까봐 평소 자동차 유리창에 붙이고 다니던 ‘아이가 타고 있어요’ 표지를 떼어버리기까지 했죠.”

  무차별적으로 여성을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라보며 조 작가는 여성을 변호하고 싶었다. 그렇게 혐오를 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 없노라고 말이다. 여성은 여전히 약자이자 피해자라는 확신을 갖고 펜을 들었다.

  변호하고 기록하기. 그 목적의식을 보여주듯 이 소설은 보고서에 가깝다. 중간 중간 각주를 달고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와 같은 신문기사와 통계를 보여준다. 설정도 ‘김지영’의 정신상담의가 기록하는 레포트 형식이다. 이처럼 픽션(fiction)과 팩트(fact)의 경계를 오가는 이유는 소설의 내용이 단순히 허구가 아니라, 지금의 여성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일종의 증거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목소리 없는 인어공주처럼 평생을 참고만 살던 김지영은 기어이 폭발한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빙의’와도 같은 증상을 보이며 마음 한 구석에 쌓여온 분노를 토해내는 것이다. 이 증상 속에서 김지영은 자신의 엄마가 되어 시어머니에게 부당함을 주장하고, 대학 동아리 선배가 되어 육아의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나 소설이 끝나도록 ‘김지영’은 끝내 치료받지 못한다. 그녀를 이해하는 듯 보였던 상담의조차 결국 다른 남성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결말을 두고 조 작가는 “김지영이 치료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잘못된 것은 김지영이 아닌, 그녀를 둘러싼 사회 그 자체인 것이다.

  “김지영은 일도 잘하고 가정에도 최선을 다하고 인간관계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녀가 남자였다면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겠죠. 이미 많은 걸 잘 해내고 있는 그녀한테 변화를 위해 나서라고까지 해야 하나요? 바뀌어야 하는 건 그녀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과 사회인거죠.”

  조 작가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기까지는 그의 높은 자존감이 큰 몫을 했다. 그 자존감의 뿌리는 다름 아닌 본교에서의 경험이었다. 어떤 역할이든 여자라는 이유로 소외당하지 않고 직접 해결하는 이화의 문화는 조 작가가 ‘여성’이기 이전에 ‘개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동제에 안전요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어요. 저는 체구가 작은 사람이지만, 그 누구도 ‘안전요원을 하기에는 체격이 작다’는 식으로 문제 삼지 않았죠. ‘나는 보호받아야 할 작은 여자가 아니고 스스로 나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아를 형성한 것이 지금의 문제의식을 키워줬다고 생각해요.”

  ‘이화 정체성’을 가진 조 작가는 이제 소설을 통해 세상 모든 김지영을 위로한다. 가장 애착 가는 인물을 물었더니 그는 주저 없이 김지영의 엄마 ‘오미숙’을 택했다. 

  “오미숙은 김지영이 차별받는 상황에서도 계속 그녀를 응원해요. 아무래도 제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딸만큼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오미숙에 투영됐죠. 제 딸을 비롯해 세상 곳곳에 있는 다른 ‘김지영’들에게도 이 소설이 힘이 되길 바라요. 어느 위치에서든 이 사회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들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니까요.”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하던 조남주 작가의 눈빛은 다정하고 진지했다. 끝까지 김지영의 꿈을 지지하던 엄마 오미숙의 눈빛이 이와 같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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