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상담센터 오혜영 실장.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장기간의 시위가 마무리됐다. 힘겹게 끌어 온 싸움에서 학생은 총장 사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화인들의 마음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이화인은 “석 달 가까이 시위에 참여하며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며 “허무함과 씁쓸함도 느껴지고, 경찰과의 대치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친구들을 보면 자책감도 느껴져 괴롭다”고 말했다.
  본지는 학생상담센터 오혜영 실장을 만나 이번 시위로 이화인들이 겪는 다양한 감정들의 실체와 원인, 대처방안에 대해 들었다.  

-본관 점거농성이 끝났다. 적잖은 학생들이 90일 가까이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끝났을 때 닥칠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은 무엇인가

한동안 어떤 일에 몰두하며 긴장, 흥분 상태에 있다가 일상에 복귀하게 되면 허전하고 허탈한 기분이 들 수 있다. 그 일에만 집중하느라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 감정변화 등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경험한 인간관계나 공동체 생활이 끝나며 함께 어려운 일을 헤쳐간다는 유대감도 사라져 외로움이나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대할지 고민인 학생들이 많다

내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시위가 끝나고 허탈한 감정을 느끼는 나에게 일상에 성공적으로 복귀하라고 밀어붙이기 보다는 내 안의 감정들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유쾌한 감정이 아니라고 회피하거나 무시하면 오히려 감정의 영향에 빠질 수 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나의 감정과 소통하며 감정을 다독일 필요가 있다. 혼자서 해결이 어려울 정도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조금 막연한데,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에 이름을 붙여 대화를 해 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허탈한 감정’에 ‘허탈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내 안의 ‘허탈이’에게 물어보는 거다. 너는 왜 그렇게 느꼈니? 느껴지는 감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의 자연스런 일부로 그 감정을 수용하게 된다. 감정에서 황급히 벗어나거나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어리석다고 탓하는 것보다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타당화 과정이 도움이 된다.

-교내 경찰이 진입했던 당시 대치 상태에 있었던 학생 중엔 충격과 공포감으로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두 세 명의 경찰만 맞닥뜨리게 돼도 무서운데, 수많은 무장 경찰들의 모습은 외형적으로도 매우 위압적이고 두려웠을 거다.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학교와 대치하게 된 상황도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때 직접 대치하지 않았더라도, 곁에서 목격한 것만으로도 유사 트라우마와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같은 경험을 한 친구들과 경험과 감정을 나누고 ‘디브리핑(debriefing)’ 하는 작업도 도움이 된다.

-디브리핑, 어떤 의미인가

  '심리적 경험보고’를 의미하는 전문용어다. 사건을 겪은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혼돈스러운 경험을 재정리하고 의미를 찾는 일이다.
시위 과정에서 상처받은 것들이 많아서, 또는 문제가 원하는 만큼 다 해결되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자신이 그동안 들인 노력이나 힘든 과정에 비해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시위에 참여했다고 이름이 기억되거나 누군가에게 칭찬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실제로 대단한 일을 해냈다.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서로 믿고 소통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새로운 시위 공동체 문화를 만들었다. 그런 경험을 서로 나누고, 이번 시위가 본인과 사회에 갖는 의미를 찾아내고 이해해야 한다.

-시위에 무관심했던 다른 친구들이 이해가 가는 동시에 밉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당연히 들 수 있는 감정이다. 친구들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힘든 과정을 나 혼자만 감당했다는 억울하고 야속한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친구보기가 괜히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무관심한 듯 보였던 친구들도 다양한 내적 갈등을 겪었을 수 있다. 친구에게 솔직하게 섭섭하거나 아쉬운 느낌을 부드럽게 전달해 보는 것도 좋다. 힘든 시기에 느낀 이화인들의 감정을 서로 공유하고 아쉬운 부분을 서로 나누면 치유적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상처를 받은 이화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큰 사건을 겪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 것이다. 본인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들을 마주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이번 일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감정을 정리해보고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인지,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찬찬히 되짚어 보는 거다.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나

학생들이 이번 사건에 대한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돕기 위해 트라우마를 주제로 한 워크샵을 준비 중이다. 상담 신청이 어려운 경우 이메일(ESCC@ewha.ac.kr)로도 급한 상담을 받고 있으니 활용하면 된다. 유레카에서 ‘E-care’라는 자가 검사테스트를 제공하고 있어 체크를 해본 뒤 트라우마나 우울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상담사를 고를 때는 한국상담학회나 한국상담심리학회에 등록된 상담전문가인지, 학회 전문가자격증은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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