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은 이화인들이 가장 바쁜 달이었다. 밀려오는 과제와 시험에 밥 한 끼 챙겨먹을 시간도, 제대로 눈을 붙일 시간도 부족한 나날이었다. 이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해도 해도 않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을 접하게 된 우리는 맥 빠진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놈의 세상은 정말 해도 해도 ‘않되는’ 망할 세상인걸까?

  우리는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세상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진화했다고 역사를 배운다. 하지만 요즘은 ‘과연 현대가 과거에 비해 진보했는가’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중세에는 봉건제가 있었다. 분명한 피라미드 구조는 누가 봐도 수탈의 구조가 명확했다. 근대에는 그 구조가 좀 더 비가시화 되고 치밀해졌다. 그러나 자본가의 그 추악함을 몸소 체험한 노동자들에 의해 민낯이 드러났다. 이런 역사의 반복에서 기득권층은 뭔가 배우고 깨달았던 것 같다. 현대에 와서 피라미드 구조는 가히 치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지고, 보이지 않게 됐다. 누가 수탈을 하고 수탈당하는 지 알아채지 못하도록 구조는 더욱 더 정교해졌고, 그 구분을 흐리는 요소들 또한 너무나 많아졌다. 비선실세의 존재가 온 세상에 드러난 지금 이 시점에서, 현대는 과거에 비해 진보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렇게 치밀해진 구조 아래서 그 구조를 누가 굴러가게 하고, 그 뒤에 누가 숨어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2년 전, 정윤회의 국정 개입 의혹이 있었지만 그는 꼬리를 잘라냈고 기회는 날아갔다. 2년 뒤 대중들의 이목을 끌만한 자극적인 또 다른 인물이 드러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최순실이 최종적인 ‘siri’인지, 그 뒤에 또 다른 배후가 있는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놓은 판인지 분별할 수 없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 놓여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최순실의 버려진 프라다 신발, 그녀의 곰탕 한 그릇 등 가벼운 얘기가 그 구조를 파헤치는 과정을 흐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또 다시 논란의 대상이 꼬리를 자르고 달아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우리가 끊임없이 지켜보고, 요지를 찾아내면 얼마든지 논란을 종결지을 기회는 남아있다. 이화는 이러한 관심으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화의 변화도, 사회의 변화도 우리의 계속된 관심에서 동력을 얻을 것이다. 이 변화의 결과가 또 다른 피라미드의 시작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시 그 구조를 파헤치는 것에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가진다면 해도 해도 ‘않되는’ 망할 세상은 전복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결론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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